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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초록 Feb 04. 2023

도려내기

사람마다 하나씩은 썩 좋지 않은 버릇을 가지고 있다. 나 역시 나쁜 습관 하나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손톱을 물어뜯는 습관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손톱을 물어뜯는 사람을 보면 비위생적이고 불쾌하다고 여겼는데, 작년부터 어느샌가 내가 손톱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외출할 때는 상시 마스크를 착용하기 때문에 내가 손톱을 뜯는 모습을 누가 볼 일은 없다. 그러나 입을 비교적 자유롭게 놀릴 수 있는 집에서는 손톱을 물어뜯는 일이 잦다. (지금 이 문장을 쓰면서도 한 번 물어뜯었다) 손톱 건강에 문제가 생길 정도로 강하게 뜯거나 하루가 멀다 하고 강박적으로 뜯는 건 아니지만, 이따금 손이 심심해지면 딱따구리가 나무 쪼는 소리를 내면서 냠냠 씹는다. 다리 떠는 습관과 함께 내가 고쳐야 할 습관 중 하나다.


손톱은 잘라도 잘라도 계속 자라난다. 그래서 난 어느새 길어진 손톱을 손톱깎이로 자를 때면 손톱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손톱의 길이가 고정된다면 귀찮게 손톱을 깎지 않아도 되니까 편할 것 같았다. 그러면서 '긍정적인 마음도 손톱처럼 잘라도 잘라도 자라난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했다. 아쉽게도 손톱은 우리의 부정적인 마음과 닮아있는 것 같다. 부정적인 생각은 아무리 떨쳐내도 다시 쑥쑥 자라서 우리를 성가시게 하니까. 어쩌면 내가 손톱을 물어뜯는 이유는 부정적인 마음을 제거하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슬프게도 나의 두 앞니는 부정적인 마음을 뜯어내기에는 너무 약하다.


언제였는지 잘 기억은 안 나는데, 한 번은 아빠가 썩은 귤 두어 개를 들고 부엌으로 가신 적이 있다. 귤이 너무 상해서 버리시는가보다 했는데 갑자기 껍질을 주섬주섬 까시더니 썩어있는 부분만 파내고 입에 넣으셨다. 역시나 몇 초 지나지 않아 퉤 하고 몽땅 뱉어내셨다. 그러면서 잔뜩 표정을 찡그리면서 나를 쳐다보셨다. 도대체 한눈에 보기에도 상할 대로 상한 귤을 왜 기어코 먹으려고 시도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는 않는다. 물론 겉으로는 일부분만 상한 것처럼 보여서 드셨겠지만, 겉을 보고 내부 사정을 판단하는 건 금물이다. 어쨌든, 내게 굉장히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아있다.


지우개가 까맣게 더러워졌을 때 칼로 겉을 살짝 도려내면 새하얗게 된다. 물론 크기는 작아지지만 왠지 새 지우개를 가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뭉툭한 연필심도 칼로 날카롭게 깎으면 새것처럼 날렵해진다. 그런데 과연 칼로 도려낸 결과물은 새 것일까? 그렇지 않다. 싹이 난 감자에서 싹만 도려낸다고 해서 독이 사라지지 않는 것과 같다. 공책 앞 장을 뜯어내면 당장은 새 공책처럼 보이겠지만 그 공책은 결코 이전과 같은 상태가 아니다. 한 장이 부족한 어딘가 불완전한 공책이다. 연필을 깎으면 당장은 새 연필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연필의 수명은 짧아진다.


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왜 스스로 칼을 들이밀고 있을까?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마다 스스로 자책한다. 조금 더 완벽하게 해내고 싶고, 조금만 더 최선을 다하고 싶다는 생각에 안타깝게도 자신을 해친다. 입맛에 맞지 않는 구석이 있으면 주저없이 칼을 들어 그 부분을 댕강 잘라 버린다. 마치 손톱을 물어뜯듯 습관적으로 스스로를 책망하고 질책한다. 자신의 썩은 부분을 남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부정적 감정을 버릇처럼 음미하며 자신을 냉혹하게 혹사시킨다.


결코 좋지 않은 습관이다. 남에게는 한없이 관대해지고 나에게는 끝없이 엄격해지는 습관. 자기 자신에게 날 선 칼을 대면 당장은 나의 연약한 치부와 약점을 떨쳐버린 것 같아 마음이 편하겠지만, 그것은 결코 온전한 나의 모습이 아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스쿱으로 아이스크림을 한가득 퍼내듯 마음을 도려내는 것이 아니다. 귀찮지만 주기적으로 손톱을 깎듯이, 매일매일 자라나는 부정적인 생각과 자신을 향한 질책과 꾸중을 과하지 않게 부지런히 관리해야 한다. 적당한 길이로, 너무 불편하지 않도록 말이다. 당장은 나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사실 그 모습이 가장 인간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저 그대로 자신을 바라보면 존귀하고 자랑스러운 나만의 색채가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스스로 너무 일그러뜨리지 말자.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이미 충분하고, 그 자체로 근사하니까. 자신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제 입으로 제 심장을 물어뜯는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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