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닥타닥 빗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기름솥에는 전병이 몸부림치기 시작한다. 해동된 전병을 뜰채에 담아 미끄러지듯이 기름솥에 부으면 한동안 모습을 감추었다가 서서히 유면 위로 떠오른다. 그때부터 시선은 전병껍질에 고정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껍질의 색깔이 변하는 정도를 확인한다. 중간중간 뜰채로 휘휘 저으면서 붙어있는 전병들을 분리시키고 위아래 골고루 튀겨지기 위해 한 번씩 뒤집어 주기도 한다.
조리실 실장님이 시범적으로 튀겨준 전병 색깔을 샘플 삼아서 나머지 전병들도 껍질색깔이 변하는 시점을 건져내는 타이밍으로 잡는다. 뜰채로 한번 건져서 기름을 빼기 위해 탁탁 털어보면, 어느 정도 튀겨진 전병들은 공중으로 솟았다가 떨어지는 동안 전병끼리 부딪치면서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그런 소리가 들리면 제때에 건져냈다는 안심이 든다. 만약 소리가 나지 않으면 다시 기름 속으로 집어넣고 뜰채를 흔들어 준다.
전병끼리 부딪치면서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
튀겨진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메밀전병을 한입 베어 물어본다. 방금 튀겨낸 전병이다 보니 아직 뜨겁기도 하고 바싹거리는 식감이 청각을 자극한다. 전병 안에는 김치 속이 들어있어서 약간 시큼한 맛이 식욕을 더욱더 자극한다. 튀겨진 메밀전병들은 야외천막식당으로 옮겨지기 위해 용기(바트)에 담겨서 용기 뚜껑을 연 상태로 층층이 쌓인다. 그러는 사이 십여분이 지나자 조리된 전병이 식어버린다. 바싹했던 식감이 약간 눅눅해진다.
바싹했던 식감이 약간 눅눅해진다.
따뜻한 온기가 식으니 손님들이 '메밀전병 먹을 무렵'이 살짝 걱정되기는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약간 부드럽고폭신한 메밀전병도 나쁘진 않을 듯싶다. 메밀을 떠올리면 역시나 강원도 평창을 배경으로 한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이 빠지질 않는다. 희한하게도 오늘 새벽 헬스장에서 켜있던 TV에서 메밀꽃 이야기를 들었는데 점심에 메밀전병을 만들다니, 기막힌 우연이다.
메밀전병이 튀겨지는 솥단지 반대쪽에서는 알록달록한 게살냉채가 자태를 드러낸다. 냉채의 베이스는 숙주다. 봉지에서 꺼낸 숙주를 싱크대에 붓고 흐르는 물에 깨끗이 씻고, 다시 한번 더 헹군다. 아직은 빳빳함을 유지하고 있는 숙주는 펄펄 끓는 물에 잠깐 들어갔다 나온 후에는 겸손해진다. 부피도 줄어들고 삼삼오오 엉겨서 덩어리 진 상태로 커다란 플라스틱 채반 소쿠리에 담가서 물을 뺀다.
봉사자들이 엉겨있는 숙주들을 손으로 살살 풀어 혜쳐준다. "엉겨있는 숙주들이 마치 미친년 머리카닥 같네요."라는 누군가의 조크에 다들 웃음이 빵 터진다. 톡 쏘는 냉채 겨자소스를 잘 풀어진 노란 숙주에 골고루 뿌리고 잘 버무린 후에 파란색 오이, 부추를 넣는다. 마지막으로 빨간색 게맛살을 넣으니 알록달록하게 맛있어 보이는 게살냉채가 완성된다.
미친년 머리카닥 같네요.
맛보기를 입속에 털어 넣으니 살짝 뭔가 부족한 맛이다. 고민 끝에 설탕을 조금 추가해 보니 부족했던 맛이 채워진다. 아무래도 새콤달콤에 길들여진 DNA가 국룰인 듯싶다. 오전봉사를 마치고 간이천막식당을 지나는데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가 운동장을 울린다. "325번 님~" 태풍이 불어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인지 아쉽지만 손님들의 숫자가 지난번보다 줄었다. 그래도 퇴근길 발걸음은 여전히 뿌듯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