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에 처갓댁에 가면 반드시 먹고 오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갈비찜'과 '양념게장'이다. 그중에서도 양념게장은 내 입맛에 딱이다. 조금 오버해서 말하자면 밖에 식당에서 먹는 아무리 맛있는 양념게장도 장모님 양념게장을 못 따라간다. 내 입맛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너무 좋아한다.
자녀들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먹기 시작한 것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고 나서도 명절 밥상 위에 놓인 '양념게장'은 항상 리필 1순위였다. 그런데 아쉽게도 작년부터 '명절음식 STOP!'을 선언하셨다. 나도 장모님의 선언에 동조하기는 했지만 내심 '더 이상 장모님의 양념게장을 못 먹겠구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더 이상 장모님의 양념게장을 못 먹겠구나'
올해도 작년과 마찬가지로 추석 음식준비 대신 동네 중식당에서 외식을 했다. 확실히 집에서 음식준비를 하지 않으니 명절 지내기가 한층 수월해졌다. 식사 후에 집에서는 간단하게 과일과 수정과로 친목을 도모하고 편히 쉬다가 귀가했다. 그런데 추석이 며칠 지나고 갑자기 장모님이 '양념게장'을 만들어 놓았으니 한번 들르라는 전갈을 보내셨다.
아마도 그냥 빈손으로 보내신 것이 못내 아쉬워서 명절은 지났지만 서둘러 다시 솜씨를 발휘하신 듯했다. 전갈을 받자마자 총알같이 튀어가서 양념게장을 받아와 맛나게 먹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받아만 먹을게 아니라 이참에 레시피 전수를 받아야겠다는 기특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기특한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직접 집에서 만들어 먹겠다는 생각이 들자,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물론 모든 정보는 장모님으로부터 전달되었고 진행하는 동안 지속적인 코치를 받았다. 우선 오랫동안 거래하셨던 가락동 수산시장을 찾아서 냉동 꽃게 2kg을 샀다. 열 마리 정도 되는 꽃게는 주인아저씨의 번개 같은 칼놀림으로 게장용으로 순식간에 손질이 되었다.
확실히 전문가는 전문가다. 저걸 내가 집에서 손실한다면 아마도 하루종일 걸렸을 것을 몇 분 만에 끝내버리다니 말이다. 그래도 집에 와서 일일이 칫솔로 껍데기를 세척하고 집게발은 망치로 툭툭 깨트렸다. 깨끗하게 세척된 꽃게는 살이 단단해지게 하기 위해 잠시 식초물에 담가두고 양념장을 만든다.
사과, 배, 양파 그리고 생강을 갈아서 양념 베이스로 하고 거기에 고춧가루, 간장, 액젓, 설탕, 미림, 물엿, 후추, 간 마늘, 대파를 추가한다. 커다란 용기에 꽃게와 양념장을 골고루 버무리고 청양고추와 참깨를 뿌려 놓으니 모양이 그럴싸하다. 양념이 잔뜩 묻은 쪼가리를 깨물어 맛을 보니 속이 꽉 찬 부드러운 꽃게살에 매콤, 달콤, 짭짭한 맛이 어울려서, 얼추 장모님의 손맛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