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다 칼로
그녀의 이름은 [Magdalena Carmen Frida Kahlo y Calderón : 마그델레나 카르멘 프리다 칼로 이 칼데론]이다. 나는 프리다 칼로의 긴 이름만큼이나 그녀가 낯설고 그녀의 멕시코 문명이 까마득하게 느껴졌다. 심지어 처음에는 혐오스럽기까지 했다.
나를 OOOOOO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나는 꿈을 그린 적이 없어요.
나만의 00을 그린 거예요.
OOOOOO이 뭘까. 20년 전에 삼국지를 읽었을 때, 일부 단어들을 화이트로 지워놨다. 한 10년 후에 다시 읽을 때 그 단어를 떠올려 보고 싶어서였다. 난 유치하게도 이런 식의 때려 맞추기를 좋아한다.
OOOOOO은 '초현실주의자'이고, OO은 '현실'이다. 프리다 칼로는 자신의 예술세계가 유럽의 영향을 받은 초현실주의가 아니라고 거칠게 말했다. 자신은 꿈을 그린 적이 없고, 자신만의 현실을 그린 것이라고... 그녀의 현실은 초현실로 오해받을 만큼 현실적이지 못했다.
초현실주의와 함께 프리다 칼로의 작품세계를 설명할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멕세코 문화로 대표되는 아즈텍 문명이다.
아즈텍이란, 12세기 라틴아메리카 대륙에 존재했던 테노치티틀란 제국을 오늘날 학자들이 편의상(근대 멕시코와 유럽인 도래 이전의 메시카를 쉽게 구분하기 위해) 칭한 이름이다.
OO와 O, 유모와 나라는 작품이다. 프리다 칼로는 많은 작품을 통해 멕시코의 전통문화를 예술로 표현했다. 그중에 내 눈에 확 띈 작품이 바로 유모와 나이다. 이 작품에 대한 해석이 너무나 궁금했지만 자료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도,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전공 김지애 님의 논문을 통해서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뉘신지 모르오나, 너무나 감사하다.
슬라이드 오른쪽에 멕시코의 위촐족의 형상을 한 석상을 보면, 아기의 몸을 한 어른이 젖을 물고 있다. 프리다 칼로 또한 유모 품에 안겨 젖을 물고 있고 아기의 몸을 하고 있지만, 고통을 통해 성숙해진 얼굴을 하고 있다. 칼로의 고통은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것 같은 흰 젖을 무는 동안 만은 사라질 것인가.
젖을 통해 칼로의 고통을 치유해 줄 것 같은 유모이지만, 그녀의 얼굴은 어둡고 무서워 보이기까지 하다. 이 경직된 얼굴은 멕시코 농경의 신 케찰코아틀을 표현한 가면이다. 가면에 나타난 둥그렇고 양끝이 붙은 눈썹은 프리다 칼로의 트레이드 마크인 짙은 눈썹과 많이 닮아 있다. 삼각뿔 같은 단단한 코 또한 그렇다.
프리다 칼로 알아가면서 칼로의 미간에 붙은 눈썹이 항상 궁금했는데, 그녀는 삶 속에서도 아즈텍 문화를 이어가고 싶었던 건 아닐까.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에서부터 절망적인 순간까지 멕시코 아즈텍문명의 신들을 비유적으로 표현했다.
미술작품을 보면서 종종, 내 삶에 한 장면을 떠올리기도 하고, 반대로 내 삶의 한 장면 속에서 어떤 그림이 떠오르기도 한다.
며칠 전 이러다 운동부족으로 죽는 거 아닌가 해서, 나름 동네에서 제일 높은 산에 무턱대고 올라갔다가 헐떡거리면서 정신이 살짝 혼미해졌다.
그때 쿠르베를 만났다. 안녕하세요라고 말까지 걸진 않았지만..
일상에서 미술을 만나기도 하지만, 삶에서 결정적인 순간에도 만난다. 결정적인 순간이라고 한다면. 출생, 죽음이 아닐까, 죽음을 표현한 많은 그림이 있다. 하지만 자신의 출생을 표현한 그림은 아마도 프리다 칼로의 이 그림이 처음이 아닐까 싶다.
'내 출생' 작품은 프리다 칼로가 아이를 유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까지 돌아가시게 되면서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 또한, 아즈텍문명을 표현하고 있다. 아즈텍에서는 아기를 분만하는 여성은 포로를 생포한 전사와 대등한 추앙을 받는다고 한다.
슬라이드의 석상은 아즈텍문명의 육체적 사랑의 신[트라졸테올트]여신이 출산하는 모습이다. 칼로는 돌아가신 어머니가 자신을 출산하는 그 모습을 흰 천으로 가리고, 오히려 엄마의 몸에서 빠져나오는 자신의 모습은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그녀의 예술세계는 고통의 표현으로 점철된다. 그녀는 고통을 그려야만 사는 여자다. 그러나 그녀의 마지막은 만세였다.
멕시코에서 수박은 죽음을 의미한다. 죽기 8일 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진 [Viva la vida 비바라 비다]는 스페인어로 인생만세라는 뜻이다. 수박의 잘린 단면을 통해 그녀의 고통을 승화시켰다는 해석이 있다.
영원한 삶으로도 해석되는 '비바라 비다'. 아마도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즐거움을 맛본 것 같다. 행복하기만 하면 그것이 행복인 줄 모른고, 즐겁기만 하면 그것이 즐거움인 줄 모르리라. 불행이 있으니 행복이 있고, 고통이 있으니 즐거움이 있는 게 아닐까. 지나간 나의 삶 속에서도 많은 순간들이 떠오른다.
죽을 것 같이 힘들었던 시간이 지나니 그 시간이 있었음에 감사하고, 아무 일 없는 지금, 심심할 것 같은 이 순간 내 삶이 찬란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은 제주대학교 교육대학원 미술교육 전공 김지애 님의 논문"프리다 칼로의 삶과 작품에 대한 고찰"을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M78tcfyN1co
https://www.youtube.com/watch?v=TGW2rJYocrw&t=2943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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