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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민 Feb 22. 2021

오빠, 나는 결혼 생활이 어려워.

(bgm. 오르막길-윤종신)

우리 부부는 여행을 좋아한다. 정확히는 여행지에서 그곳의 맛있는 음식과 함께 술 한 잔 하는 것을 좋아한다. 적당히 취기가 오르면 집이나 동네의 식당에서는 오고 가지 않는 속 깊은 대화를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낯선 곳이 주는 신선한 기운은 우리를 무방비 상태로 만들고 평소에 꺼내기 어려웠던 무겁거나 예민한 주제도 뭉근하게 풀어져 오가게 한다.


금요일 오후 반차를 내고 가벼운 가방 하나 들고 해운대에 갔다. 곱창전골에 소주로 기분 좋게 예열 후, 2차로 우리의 추억이 깃든 브루어리로 자리를 옮겨 맥주 한 잔씩을 시켰다. 배도 부르겠다 분주히 무언가 먹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럽게 대화에 집중하게 되는 기분 좋은 시간, 나는 언젠가는 하고 싶었던 마음속 이야기를 꺼냈다.


오빠, 나는 사실 결혼 생활이 어려워.


놀란 그의 표정에 나도 당황했다. '아, 내가 전하려던 핵심은 이게 아니었는데!'싶어 빠르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말 그대로의 의미가 아니니 마저 들어보라는 나의 말에 그는 약간 안도하는 듯 했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이었다.


내가 결혼에 대한 로망이 있었나 봐.
그냥 무작정 행복할 거라는.
내 말은, 결혼이라는 게 생각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한 거였다는 거야.


내 인생에 관계를 위해 이렇게까지 노력했던 적은 또 없었다. 이전의 모든 관계들은 비교적 적당한 노력으로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갈 수 있었지만 부부 관계는 그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서로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기꺼이 한다. 이것이 내겐 가끔 벅찼다. 나와 당신이 만나서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게 원래 이런 것 같다고도 말했다. 여전히 변함없이 나는 당신을 사랑하지만 그냥 나는 결혼이 이렇게 힘든 건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도 나와 같을 줄 알았다. 그는 결혼 생활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어렵거나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고 했다. 참고 노력하고 양보하고 가끔은 다투기도 하며 서로 맞춰 나가는 것, 내가 결혼생활의 '어려운 부분'이라고 일컫는 이 모든 것들이 그에게는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었다. 순간 놀라움과 동시에 조금은 허탈했고 또 다행스런 맘이 들었다. 내가 남편보다 성숙하지 못해서 혹은 더 예민해서 나만 힘들었을까? 역시 나보다 그릇이 큰 사람이구나, 내가 배울 게 많은 사람이구나. 나를 많이 사랑하는구나. 참 감사하게도.


당신이 더 많이 노력한 거 알아, 고마워.


라는 그의 말에 난 고개를 저었다. 그도 나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더 많은 노력을 했다는 것을 아니까. 그리고 눈물이 터졌다. 그의 인정 어린 말이 내 마음을 쓰다듬었다. 모두 터놓고 눈물을 쏟아 내고 나니 더 큰 사랑을 채울 공간이 생기는 듯했다. 정말로 그 순간, 남편을 조금 더 사랑하게 됐다.


그를 서운하게 할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다만 솔직하고 싶었다. 적어도 내가 결혼이 어렵다고 했을 때, 그가 자신에 대한 내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 거란 믿음이 있었다. 나를 책망하지 않을 거란 걸 알았다. 그랬기에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한 마디에 나의 힘듦은 모두 녹아내려버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혼 생활은 어렵다. 언제 쉬워질지 알 수도 없다. 그렇지만 이런 대화가 끊이지 않는다면 아주 어려울 것 같지도 않다. 나를 다독이고 안아주는, 나보다 넓고 건강한 마음을 가진 이 멋진 남자와 함께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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