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세권 만들기 대작전
내가 살고 있는 춘천은 법정문화도시이다. 법정문화도시는 정부에서 일정 단계와 심의를 거쳐 지정하는 것으로 예비문화도시를 거쳐 그 중에 소수의 도시만이 법정문화도시가 되고 총 5년간 국비와 도비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춘천은 2021년도에 법정문화도시가 되었고 어느새 마지막 해에 접어들었다. 춘천이 예비문화도시일 때 코로나가 확산되어 혼란스러운 시기였지만 이에 주춤하지 않고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였었고 나도 그 사업들에 참여하였었다. 그 과정에 함께하며 꽤 설레었던 것 같다. 예전부터도 인구대비 문화예술사업에 대한 예산비율이 높았고 예술인들도 많이 거주하는 도시이기에 문화도시라는 이름하에 더 신나고 즐거운 일들이 생겨날 거 같았기 때문이다.
춘천이 법정문화도시가 되는데에 큰 공헌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업중 하나가 '도시가 살롱' 사업이다. 도시가 살롱은 내 집에서 5분만에 슬리퍼를 신고도 갈 수 있는 문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으로 기존에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주인장들이 자신의 취향과 니즈를 반영한 프로그램을 이웃들과 함께 진행하는 커뮤니티 사업이라고 볼 수 있다. 숨겨져 있던 공간들과 사람을 발굴하고 서로를 알아가며 새로운 시도를 해볼 수 있다는 지점에서 좋은 취지와 기획으로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2020년도에 시작하여 지금까지도 계속 춘천의 간판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을만큼 꾸준히 이어져 왔고 나도 여러번 참가자로 혹은 진행자로 참여한 경험이 있다. 좋은 여파로 다른 지역에서도 사례 연구를 위해서 춘천으로 자주 방문하였고 힘든 코로나 시기에 사람들을 만나고 공간을 운영하는 주인장들에게도 큰 활력소가 되어주었다.
나에게는 조금 다른 의미가 있는데 춘천에 온 지 얼마 안 된 상태에서 도시가살롱 프로그램에 참여자로 참가하며 거의 처음으로 가족이외에 다른 춘천 사람들과의 관계를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 참여했던 프로그램은 음감회였는데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이나 사연이 담긴 음악들을 공유하고 자연스럽게 얘기를 나누는 라이트하지만 내밀한 분위기가 좋았던 프로그램이었다. 서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오히려 공허함을 감출 수가 없어서 춘천으로의 이주를 결심한 것이었는데 도시가 살롱에 참여하며 그런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당시의 작지만 큰 위로와 씨앗이 춘천에서 활동을 하는데 꽤 큰 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점차 지역내에서 활동을 하는 일들이 늘어나면서 다른 도시가 살롱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보다는 내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들이 더 많아졌다. '낮보다 푸른 밤의 축제', '강남동 댄스 클럽', '몸치 탈출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였는데 처음에는 지역내 예술가와 지역주민들을 연결하고 싶었고 특히 밤이 되면 조용해지고 춘천에 갈 곳이 적다고 여겨져서 밤에 놀자는 취지의 프로그램(낮보다 푸른 밤의 축제)를 운영하였었다. 그러다가 점점 내가 하고 있는 춤으로 사람들과 만나고 싶다는 생각으로 스튜디오가 위치한 공간이 온의동인데 행정상으로 강남동이라고 하여 '강남동 댄스 클럽', 올해초에는 예술가의 작업실을 도시가 살롱으로 만난다고 하여 춘천에서 춤추자고 할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인 '저는 몸치라서요' 얘기가 생각나서 기획한 '몸치 탈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무엇이든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고 했던가. 처음에 사람들을 만나는 게 좋아서 지속적으로 참여하고 운영한 프로그램들이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는 데 지치는 순간들을 맞이하며 이어나가는 마음들이 조금씩 수그러들게 되었다.
법정문화도시가 되었을 때 아마도 나를 포함해서 많은 춘천의 사람들 그리고 예술가들이 설레었을 것 같다. 예비문화도시 시기에 창작노트 사업, 방구석 활동가, 빈집 프로젝트 등 예술가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지점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법정문화도시가 되고 진행되면서 내가 느끼기에는 시민에 방점이 찍히며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는 느낌이었다. 나만의 느낌일 수도 있지만 직접 들었던 말들도 예술가보다는 예술가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들이었고 그 속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같이 공연도 하며 지금도 함께 하고 있지만 서울에서 느낀 것과는 다른 느낌으로 공허함과 답답함이 늘어나며 쌓여가고 있었다.
문화와 흐름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물길을 만들어주고 터주듯이 시스템과 참여자들간의 긴밀한 연계가 중요하다. 가끔 우리나라 문화예술사업들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 같이 나아가기 보다는 한 쪽으로 집중되며 한 쪽을 배제한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 코로나 시기에 온라인, 비대면을 너무 강조해서 사람들과의 연계가 중요한 공연예술사업은 무척이나 힘들었고 퀄리티를 다시 올리기 위해서 공연장에서의 감각을 되찾기 위해서 힘든 시기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문화도시사업에서도 시민에 방점이 찍히면서 도시에서 지속적으로 활동해오고 춘천으로 이주하여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려는 예술가들은 갈 길을 잃게 되었을 것이다. 나 또한 많은 지원과 수혜를 받았고 지역에서 활동하기 위한 기반을 마련해 준 부분에 있어서 기관과 관계자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늘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예술가로서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았는지에 대해서 되묻게 되고 다른 곳들로 다른 무대들로 몸이 움직이게 된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를 좋아하고 사랑한다. 그리고 더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고 좋은 곳으로 만들어 나가고 싶은 바람도 있다. 그러려면 빠르게 물길을 만들어내고 배를 띄우고 나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물 속에서 살아가는 플레이어들의 이야기도 더 들어주고 같이 물길을 만들어 냈으면 한다. 한 번 만들어진 물길은 다시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 작은 바람이 있다면 슬리퍼를 신고 동네 친구들이 모여서 담소도 나누고 음악을 즐기며 춤도 출 수 있는 그런 일상적인 사사로운 살롱들이 도시를 채워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