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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들판

들판에서의 춤

by 봄내춤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드립니다."

당신의 들판은 2020년도에 춘천에서 진행한 빈집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프로젝트내의 세부이름은 전환가게 였는데 지난 글에서 얘기했듯이 춘천은 법정문화도시로 선정되었었고 그 때 내걸었던 슬로건이 전환문화도시춘천이었다. 전환, 평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언어인데 왠지 춘천에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 당시 나도 서울에서 춘천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고 있는 중이었고 역사학과를 전공하고 이후에 현대무용수로 전향한 나의 이력에도 어울리는 듯 했다.


빈집프로젝트는 2020년 예비문화도시일 때 시작한 사업으로 도시내에 있는 빈집을 리모델링하여 앞에서 얘기한 전환가게와 인생공방이라는 문화예술공간을 조성하는 프로젝트였다. 인생공방은 커뮤니티 아트를 위한 성격이 강했었고 전환가게는 전환실험가를 선정하여 도시 안에서 다양한 문화예술실험을 진행하기를 바라며 기획된 프로젝트였다. 2020년 여름 전환실험가 공모가 올라왔었고 춘천에 온 지 얼마 안 된 내가 설마 될까하는 큰 기대도 없이 지원하였지만 운이 좋게도 선정되어 2021년부터 2023년까지 3년동안 전환가게에서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이전부터 나만의 작업 공간을 원했었기에 무척이나 기뻤고 사람들과의 다양한 활동을 생각하며 얼른 시작하기를 기다렸다.


우리나라에서 공적 사업이 진행될 때 중요한 부분은 절차이다. 절차에 따라서 결재가 이루어져야 하고 일이 진행된다. 막상 당사자는 기다릴 수 밖에 없을 때가 많다. 지금이야 여러번의 기다림을 경험해서 원래 그렇다는 것을 알지만 그 때 전환가게 오픈을 기다리던 때에는 여러 상황이 맞물려 답답함을 느끼고 있었다. 자세하게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신고식을 고되게 치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공간이 어느 정도 완성되고 평소에 생각하던 프로그램들을 하나씩 시작할 수 있었다. "아침을 여는 춤", "달밤에 댄스", "취향 공유의 밤", "당신의 창가" 등 무용이라는 어려운 말 대신에 사람들과 소소하게 모여 춤을 추고 일상적인 순간을 특별하게 만들고 싶었다.


전환가게에는 개별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았었는데(원래는 여러 곳의 전환가게가 생길 예정이었다) 여러 고민 끝에 '당신의 들판'이라는 이름으로 정하였다.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몸으로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들판은 오래된 주택 2층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옥상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야외 공간에 인조잔디를 깔고 그 곳에서 춤을 추고 사람들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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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공연이나 상영회를 열기도 하고 지역의 다른 작가들을 초대해서 특별한 취향을 소개하거나 요리 모임을 운영하기도 하였다. 처음에는 3년이나 할 수 있을까 하였지만 어느새 3년이 지났고 지금은 이름만이 남겨져 있는 상황이다. 그래도 그 때의 만남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춘천에서 활동하는데 큰 도움과 힘이 되고 있다. 어쩌면 무용을 처음 배우고 노력할 때 처럼 순수하게 열정을 가지고 임했던 순간들로 기억한다. 내가 직접 기획하고 사람을 모으고 진행하면서 경험을 쌓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갔던 그 기억들이 오롯이 생생하게 지금도 기억나는 것 같다. 힘들 때면 당신의 들판에 누워서 쉬곤 했었는데 그 때 느꼈던 바람이 그리울 때가 있다. 도시 속에 숨어 있던 작은 공간, 당신의 이야기를 들었던 공간. 도시 곳곳에 당신의 들판 같은 곳이 있기를 바라며 지금은 다른 공간이지만 사람들과 함께 여전히 춤을 추며 춘천에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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