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은 어디에 있는가
지금은 세상을 떠난 연극연출가 피터브룩이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비어 있는 어떠한 공간이라도 나는 무대라고 부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빈 공간을 지나가고 다른 사람이 그것을 바라본다면 그것만으로 연극이 시작되기에 충분하다." 그의 저서 <빈 공간>에 나오는 말이다. 춤의 무대는 어디일까? 스트릿댄스라는 장르도 있고 거리예술이 낯설지 않는 시기에 누군가의 집 거실에서 혹은 길거리에서 작은 카페에서 누군가는 춤을 추고 다른 누군가가 바라보고 있다면 그 순간 공연은 성립된다.
코로나 시기에 극장 출입이 제한되고 공연도 온라인 송출로 거의 다 전환되면서 다른 예술도 그랬겠지만 공연예술 분야는 숨구멍이 막혀버린 기분이었다. 공연은 관객이 필요하다. 공연이 이루어지는 그 공간에서 바로 앞에 있는 관객들과의 호흡이 무척 중요하다. 작품 자체가 살아 숨 쉬게 되는 것이다. 관객이 없는 극장에서 카메라만이 퍼포머들을 바라보고 그 반쪽짜리(라고도 볼 수 없는) 공연을 온라인으로 전달할 수 밖에 없을 때 느꼈던 그 씁쓸함을 잊을 수가 없다. 객석이 다 차지 않고 비어 있더라도 관객이 찾아온 극장에서 진행하는 공연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그래서 어떤 공연예술인들은 잠시 아니면 아주 무대에서 멀어진 사람들도 있고 그래도 방법을 찾으며 온라인으로든 아니면 거리유지 단계를 어떻게든 지켜가며 공연을 진행시킨 사람들이 있다. 나는 후자에 속했다. 나에게는 공연장이 집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평극장 시리즈를 진행하게 되었다. 보통 한평극장을 소개할 때에 '전문적인 극장이 아닌 일상적인 공간에서 진행되는 공연프로젝트'라고 소개를 해왔다. 처음에는 시리즈로 진행할 생각도 없었고 예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한평댄스 유튜브를 시작하고 재단에서 지원을 받게 되면서 활동과 연계하여 한평극장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을 올리게 되었다. 첫 시작은 빈 집이었던, 앞에 글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전환가게 '당신의 들판'에서 공연을 진행하였다. 제목도 "Where is my HOME?"으로 춘천으로 이주하면서 느낀 나의 집에 대한 생각들, 코로나로 인해 집이라고 생각한 공연장이 폐쇄된 심정, 늘어가는 빈 집들과 부동산으로만 여겨지는 집에 대한 사유들을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무모할 수도 있었지만 3일 동안 어느 날은 3번의 공연을 진행하며 총 8회의 공연을 진행하였다. 그만큼 직접 관객을 만나서 이야기도 나누고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컸었던 것 같다. 시작이 어려웠지만 한 번 진행해보고 나니 다른 장소들에서도 공연을 진행하고 싶어졌다. 춘천에서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던 공간들을 찾아가서 주인장분들을 만나고 공간을 탐색한 뒤 그에 맞게 주제를 정하고 출연진들을 섭외하여 공연을 진행하는 과정들이 무척 즐거웠다. 그렇게 하다 보니 총 열 번의 한평극장 공연을 진행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 시기가 종식되면서 지금은 한평극장도 자연스럽게 마무리된 상태이다.
2021년도에 4 작품(진행공간 : 전환가게 당신의 들판 / 서툰책방 / 재미야 / 보나커피집 - 이 중에 세 곳이 사라졌다), 22년도에 4 작품(진행공간 : 아트살롱 썸 및 전환가게 / 카페 설지 / 모두의살롱 후평), 23년도에 2 작품(진행공간 : 고양이 책방 파피루스 / 개나리 미술관)을 진행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여러 일들도 있었고 거의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부분이 많다 보니 스스로의 역량(?)이 조금 늘어난 부분들도 있었다. 그래도 이렇게 공연을 할 수 있게끔 허락해 주고 도와주신 공간의 주인장분들 그리고 같이 해 준 퍼포머들과 관객들이 있어서 크고 작은 도움으로 공연을 해낼 수 있었다. 공연을 하나 만들고 올리려면 많은 사람들의 협업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세계로 뻗어나가고 유명한 작품과 공연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지역에서 사랑받고 지역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연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주요한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한평극장은 다른 형태로 다시 진행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무엇보다도 퍼포먼스의 역할, 공연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공간이 있고 퍼포머가 있으며 누군가 그것을 바라본다면 공연은 이루어지고 계속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https://youtu.be/wNbIGKHw96s?si=IQYTPY2R6DUWGfm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