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에 맞서는 최고의 무기
상황을 통찰하는 농담을 좋아한다.
특히 슬픈 순간에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여유를 가진 사람이라면 일단 존경한다. 삶은 고통이고, 유머는 고통의 순간에도 공포에 압도 당하지 않겠다는 기세이기 때문이다.
유방암은 항암 2차가 끝나면 예외 없이 머리카락이 술술 빠진다. 엄마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온 탈모로 엄마는 매일 아침 베개를 털었다. 입원 준비를 하며 엄마가 얼른 가발이든 모자든 사야겠다고 말하며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시원하게 밀고 왔다. 모자를 쓰고 3차 항암을 위해 입원 한 첫날, 엄마는 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웃긴 얘기해 줄까? 나 샴푸 가져왔다?"
나는 믿는다. 엄마는 암에게 압도당하지 않았다.
오래전 대학에서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무성 영화 수준의 프랑스 영화였는데 제목이 '불의 발견'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원시 부족이 최초로 불을 발견한 내용을 흑백영화로 찍었는데 중간에 일명 '킬포' 장면이 꽤 있었다. 하이라이트는 불을 발견해서 다른 부족에게 가져다주려고 열심히 가다가 물웅덩이에서 넘어져서 불을 꺼트리는 장면이었고, 두 번째는 부족과 부족이 만났을 때 선진부족이 '웃음'을 알려주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우연히 만난 부족에게서 여러 가지 기술을 배운다. 그러던 중 나무에서 열매가 머리에 쿵 떨어진다. 주인공은 그냥 아파할 뿐이지만 상대 여주인공은 그 장면을 보고 박장대소한다. 웃는 행위를 처음 보는 주인공은 한동안 어리둥절해하다가 조금씩 따라 웃기 시작한다. 일차원적인 고통을 경쾌한 웃음으로 반전시킨 그녀의 웃음은 지적이면서 강했다.
웃음은 동물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가치인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서도 운명에 더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의 기술이다.
유쾌한 사람은 농담을 적절하게 잘 활용하며, 상쾌한 사람은 농담에 웃어줄 줄 알며, 경쾌한 사람은 농담을 멋지게 받아칠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농담의 수위를 높일 줄 안다. 고민스럽고 복잡한 국면에서, 유쾌한 사람은 상황을 간단하게 요약할 줄 알며, 상쾌한 사람은 고민의 핵심을 알며, 경쾌한 사람은 고민을 휘발시킬 줄 알며, 통쾌한 사람은 고민을 역전시킬 줄 안다.
<마음사전>-김소연 p70
작품 <풍선> 박진성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