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을 모아
새벽 1시. 항암치료를 위해 간호병동에 입원한 엄마에게 갑자가 전화가 왔다.
"정은아, 정은아. 엄마 이상해. 엄마, 이제 갈 거 같아. 정은아 잘 있어. 사랑해."
전화기를 대신 받은 간호사분이 '엄마에게 섬망 증상이 온 것 같다'고 전했다. 나는 내일 당장 간호병동에서 나와 일반 병실로 옮기겠노라고 하루 밤만 엄마를 잘 부탁드린다고 말씀드렸다. 깜깜한 새벽, 창문 멀리 엄마가 계신 병원 쪽을 향해 오랜만에 두 손을 모아 기도했다. 하지만 '우리 엄마를 살려주세요. 도와주세요'라고 신에게 빌지 않았다. 대신 엄마에게 기도했다. '내일 아침까지만, 엄마. 내일 아침까지는 죽으면 안 돼. 나 기다려, 알았지?'
오래전 엄마를 따라 교회에 다니기 시작하고 힘든 일이 있을 때면 신에게 늘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크고 작은 기대를 품은 기도는 늘 실망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동생이 죽은 이후 기도를 멈췄다. 내 고통이 어차피 어떤 존재에 의해 계획된 것이라면 아무리 기도해 봐야 무슨 소용이던가. 신이고 나발이고 다 싫다고 선언하고 나서는 비빌 언덕이 없어져서 그런지 마음이 오히려 단단하고 편해졌다. 상황에 대한 신의 의도와 의미 같은 건 따위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받아들이고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헤쳐나갔다. 기도가 없으니 기대가 없고, 기대가 없으니 실망도 없었다.
그런데 최근 다시 기도를 시작했다. 요즘의 기도는 신에게 바라는 기대가 아닌 나와 타인을 향한 응원이다. 두 손을 모으고 단전에 힘을 주어 나와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버틴다. 운동 경기를 하는 아이의 부모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모으고 힘을 주고 아이가 뛸 때 함께 뛰듯 나를 위해, 혹은 같은 시각 다른 곳에서 고통받는 누군가를 위해 손을 모으고 배에 힘을 준다. 함께 수술을 받고 함께 고된 노동을 하고 함께 운다. 그리고 꼭 응원의 목소리를 전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응원은 원래 소리가 클수록 힘이 나는 법이니까.
작품 <온기가 된 사람> 노경화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