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으로 말하는 행복
주눅 들지 않고 지금 행복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존재가 있다. 원하는 것을 고민 없이 행동으로 옮기고 결과가 주는 행복을 충분히 누리는 존재. 그 이름은 강아지이다.
존재 자체가 사랑이며 기쁨인 생명체가 우리 집에도 있다. 맨 처음 포메라니안의 '포'를 따서 '포비'라고 이름 붙었으나 '뽀비'라고 불리다가 하는 짓이 너무 삼식이 같아서 최종적으로 '뽀식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녀석이다.
이미 반려견을 키운 경험이 있는 우리였지만 뽀식이가 처음 왔을 때 생각보다 예민하고 까칠해서 너무 당황스러웠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뽀식이와 친해져야 할지 앞이 막막했다. 하지만 동물병원 선생님의 말씀이 뽀식이와의 소통에 나태했던 우리를 정신 차리게 해 주었다.
강아지가 짖는 것은 그들의 언어예요. 강아지마다 조금씩 다른 언어를 사용합니다. 그들도 우리도 서로의 언어를 알아듣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죠.
처음 육아를 했을 때가 떠올랐다. 하루 종일 울기만 하던 아이는 그저 작은 동물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가 나와 눈을 마주치기 시작할 무렵 우리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아이는 내 언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대신 내 목소리의 파동과 눈동자의 움직임을 읽었다. 나는 아이의 눈을 보며 아이가 내는 작은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발가락의 꼼지락 거림까지 세세하게 살피며 아이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게 내가 알던 언어를 제외한 모든 감각이 새로운 언어가 되어 아이와 소통했다.
뽀식이와의 소통은 바로 그 순간에 평생을 머문다. 우리는 아이와 같은 방식으로 소통한다. 뽀식이는 우리의 목소리와 손짓, 발짓에 온 신경을 기울여 우리의 언어를 알아차리고 우리는 뽀식이의 꼬리가 움직이는 속도와 모양, 짖는 소리의 무게를 통해 이해한다.
몸으로 표현하는 뽀식이의 언어는 특히 기쁨과 행복에 더욱 특화되어 있다. 집에 돌아왔을 때 뽀식이가 온몸을 내 다리에 비비며 하염없이 배를 까고 드러누으면 나도 같이 드러누워 머리칼을 비비곤 한다. 그럴 때마다 어디선가 뽀식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오늘 하루 어땠어? 그래도 썩 나쁘지 않은 하루였지? 얼마나 보고 싶었다고. 너를 보니까 너무 행복해. 좋아 죽겠어. 고마워.
작품 <꽃을 문 돌돌> 이지연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