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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Jun 21. 2024

나를 소모하지 않는 삶

고양이처럼

언제나 친절하고 다정한 우리의 영원한 친구 강아지를 제치고 요즘은 도도한 고양이가 인기다. 친근함을 이유로 자신의 에너지를 너무 많이 소모하게 하는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선택이 아닐까? 그림 속 고양이가 내게 말한다.


내가 나인게 뭐, 그래서 어쩌라고.


신나게 내달리는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뻗어버리는 강아지와 달리 고양이는 최대한 적게 움직이며 최소한의 에너지만 사용한다. 소리도 내지 않으니 성대마저 태어난 상태의 에너지에서 크게 변함이 없을 듯하다. 하루종일 분초단위로 쪼개 살고 자신을 과대포장해 판매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고양이의 차분함과 도도함은 그래서 더욱 닮고 싶은 모습이다.


최근 읽은 책 '마티아스 뉠케'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에서 추천하는 예도 고양이의 모습과 닮아 있다. 자신을 많이 드러내지 않으며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조용히 '자신의 보폭과 속도대로' 걸어가는 고양이들이 꽤 현명해 보인다. 그들은 시끄럽고 부산스럽게 자신을 알리려 하지 않고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 뿐이다. 다가오지 않고 도도한 눈빛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며 자신에게 오게 만들고, 상대에게 마치 기회를 주겠다는 듯 조용히 응시하며 기다린다.


고양이의 눈이 유독 인상적인 것은 잠시동안 멈추는 시선 때문이기도 하다. 상대방을 멈칫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눈빛은 모르는 사이에 상하관계를 만들고 자신은 주인님의 위치에 올리고 상대를 집사가 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들의 작은 입은 마치 '너희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보고 내가 결정할게. 아주 작은 소리로 말할 거니까 집중해서 잘 들어야 해.'라고 말하는 듯하다. '침묵'과 '응시', 두 가지 기술로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야말로 고양이가 가진 삶의 노하우이다.


모든 관계가 다 깊은 우정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느슨한 관계'와의 친절한 접촉도 중요한 의미가 있다.[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p246


최근 고양이처럼 나를 소모하지 않고 현명한 삶을 살려고 노력 중이다. 정말 다가가고 싶은 일이 아니면 적당한 거리에서 조용히 바라본다. 때를 기다리며 최적의 타이밍에 순간적으로 집중한다. 사람들과 덜 주고 덜 받으며 '관계대사량'을 낮추고 '느슨한' 정을 나누며 살며 과대포장을 벗고 진짜 내 모습으로 살아간다.



작품 <Hyeonyeong & Kafka> 노석미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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