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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Jun 26. 2024

초록을 즐길 시간

I am ready

빨간 해와 파란 달이 매일 뜨고 지는 방, 열쇠 구멍 밖으로 초록이 펼쳐져있다. 한 아이가 내 방을 향해 어서 나와 함께 놀자고 손짓한다.



오랫동안, 빨간 해가 뜨면 무모하도록 열정의 불씨를 살리다가도 파란 달이 뜨면 차가운 현실 앞에서 냉정해졌다. 매일 희망과 절망을 반복하던 시간, 천진난만하게 나를 부르는 손길들이 부럽고 때론 질투가 났다. 그러는 한 편 늘 열쇠 구멍으로 밖을 구경했다. 초록이 한 없이 펼쳐진 안전지대에서 사람들이 웃고 있었다.



육아와 간병 사이에 묶인 나의 답답함을 달래준 유일한 무기는 등산이었다. 아이들이 등교를 하고 엄마가 병원에 가 있는 오전, 두시간이면 나만의 초록을 즐길 수 있었다. 겨울의 회갈색 나무들도 봄의 연둣빛 싹도 좋았지만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건 한여름 진하게 초록을 내뿜는 나무들이었다.



내가 흘린 땀만큼 나무도 진액을 뿜어내며 함께 호흡했다. 오직 내 몸과 마음만 챙기면 되는 시간, 습한 공기를 타고 나무들이 나에게  이 시간만큼은 안전하게 쉬라고 말했다. 그럴 때면 열쇠구멍 밖에서 나를 부르던 아이처럼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땀을 닦았다.



이젠 문을 열어두고 무한한 초록을 즐긴다. 어느새 문 앞에 와서 내 방으로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는 아이에게 말한다.



"어서 와, 언제든 놀러 와. 나, 이제 준비가 된 거 같아."



작품 <나무> 장욱진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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