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탕
습도가 높은 산을 좋아한다. 공기를 가득 채운 물방울들이 살결에 닿을 때면 마치 숲에 잠수하는 기분이다.
비 오는 날의 산은 더 좋다. 부슬비가 내리는 날에 산에 오르면 등산객이 상대적으로 적은 탓에 곤충들과 작은 동물들이 더 많이 나와 있다. 사파리에 들어온 듯 나의 존재를 최대한 알리지 않으며 산을 살살 오르면 맑은 날 보지 못했던 숲 속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올여름엔 꼭 도전해보고 싶은 게 하나 있다. 바로 등산러버 지인을 통해 알게 된 '알탕'이다. 한 여름 등산을 하고 하산 길에 온몸이 땀에 절어 있을 즈음 계곡을 만나면 그냥 풍덩하고 뛰어드는 것이다. 그날은 미리 속옷대신 비키니를 입고 등산복을 착용할 예정이다.
햇살이 조명이 되어 나의 알탕을 비추고 땀과 계곡물이 뒤섞여 첨벙거리는 순간을 상상한다. 파란 하늘엔 숲 속 물방울들이 올라가 만든 새하얀 구름 한 점이 지나간다. 물방울들을 올려 보내 조금 건조해진 바람이 알탕을 마치고 나오는 나를 시원하게 말려준다. 행복하다.
작품 <Emotion-light> 도성욱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