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면, 삶의 여유
긴장하거나 주변을 둘러보지 않는 표정. 몸을 웅크리지 않고 축 늘어뜨린 팔다리. 서로에 대한 믿음과 환경이 안전하다는 안심, 보호받고 있다는 확신에서 나오는 미소를 머금은 아기곰과 아기양이 편안한 잠에 빠져있다.
최근 10년 중, 아무 걱정 없이 푹 잔 날이 딱 이틀 있다. 코로나 확진으로 안방에 혼자 격리되었던 날, 얼굴은 뜨겁고 목에서 불이 났지만 속에서 콧노래가 나왔다. 공식적이고 합법적으로 독방 자격을 얻은 이틀. 오랜만에 하루 종일 나의 시간으로 살고 나의 밤에 편하게 잠을 잤다.
넷플릭스에서 마음에 드는 시리즈를 발견해 하루종일 정주행을 했다. 이른 저녁에 잠이 들고 새벽에 깨면 글을 썼다. 다시 잠을 자다가 눈이 떠지면 일어났다. 밥을 먹고 글을 쓰다가 책을 읽었다. 가족 중 누군가 나에게 말을 걸고 싶어도 절대 마주치거나 대화를 하면 안 되는 상황이었으므로, 나는 철저하게 차단되었다. '차단'은 곧 '나만의 공간과 시간'이 되었고 그곳에서 오히려 나를 살리는 숨을 쉴 수 있었다.
이틀 동안 아무 꿈도 꾸지 않았다. 사람에게 자기만의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 지. 때로는 대화가 없는 시간과 공간이 위로와 평화를 주는 것임을, 독방생활에서 알게 되었다. 3일 차에 아이 둘이 모두 감염되어 내 방으로 들어왔다. 독방생활은 끝이 났지만 나는 이미 여유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틀이면 해소되는 스트레스를 그렇게 오랫동안 묵히며 이고 지고 살아왔다.
요즘은 잠을 잘 잔다. 꿈을 꾸는 날도 거의 없다. 잠들 만하면 함께 자고 싶다고 문 앞에 서있던 아이들은 더 이상 나를 찾지 않는다. 새벽에 갑자기 응급실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노크를 하던 엄마도 이젠 천국에서 편히 쉬고 계시다. 피곤하면 코를 고는 남편이 나의 숙면을 위해 거실 소파에서 자 주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가끔 마음이 지칠 때 생각한다. '이틀만. 딱 이틀만 푹 자게 해줘.' 현실적으로 격리된 시간과 공간이 허락되지 않으므로 스스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카페에 가거나 가까운 곳을 산책하고 아이 방이든 거실이든 혼자 자는 시간을 만든다.
물론 1박 2일 훌쩍 혼자 여행을 떠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거라면 10년은 너끈히 차분하고 여유롭게 안온한 삶을 살 수 있다. 꽤 괜찮은 가성비 아닌가?
작품 <One Night> 이안온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