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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Jul 30. 2024

게으름, 무절제, 만끽

혼자 여행이 나에게 준 선물

아이들이 없는 이틀. 혼자 어디로든 다녀오고 싶어 무작정 열차표 앱을 열었다. 본능적으로 검색한 장소는 경주. 몇 번의 여행에서 언제나 포근하고 아늑한 곳으로 기억된 곳이었다.


사실 경주는 나 같은 구름관찰자에게 최적의 장소이다. 고도가 높은 빌딩이 없어 하늘 전체에 구름을 마음껏 펼쳐놓고 구경할 수 있다. 게다가 적운부터 층운까지 구름이 하루종일 온갖 장기를 보여주는 여름이 아닌가. '본능적으로'라고 했지만 어쩌면 뇌는 내가 자는 동안 열심히 정보와 추억을 모아 최적의 장소를 이끌어 냈는지 모른다.


몇 장 남지 않은 입석 티켓을 끊고 숙소를 검색했다.  맛집 리스트를 추천받고 알베르 카뮈의 '여름' 책과 여름옷 몇 벌, 이어폰과 노트북을 챙기기까지 1시간 만에 모든 여행준비가 끝났다. 오랜만에 떠나는 혼자 여행. 처음 떠났던 혼자 여행이 물장구치기였다면 이번엔 깊이 잠수하는 여행을 꿈꿨다.



여름 경주는 뜨거웠다. 낮 기온이 36도에 육박했고 거리는 지글지글 끓었다. 온몸으로 나를 끌어안는 열기가 마냥 좋았다. 힘든 여름을 이겨내기 위해 삼계탕을 먹으며 흘리는 땀이, 아픈 곳에 달라붙어 화끈하게 열을 내는 파스가, 운동을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연인의 끈적한 허그가 원색적인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딱 뜨거운 그만큼 시원하게 해주는 것처럼 경주의 여름은 오히려 나를 상쾌하게 했다.


먹고 싶은 메뉴라면 칼로리와 가격을 신경 쓰지 않고 주문했다. 길을 잘못 들어도 미안한 마음 들지 않아 좋았다. 걷다가 마음에 드는 곳에서 한참 머물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들으며 동궁과 월지의 조명을 즐겼다.



아침에 눈을 뜨고 한참을 멍 때리다가 노트북을 열었다. 어제 하루 열어본 나를 위한 선물 상자들을 떠올렸다.


무절제. 게으름. 만끽.


선물들이 마음에 쏙 들어 키워드를 나열하며 웃었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닌텐도를 받아 든 초등 아들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나도 아이처럼 한동안 이 행복에 젖어 살듯 하다.



작품 <나를 위한 선물-수고했어> 윤소연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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