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나 젤리가 아니야
젤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눈코입을 가진 녀석이 나에게 말을 건넨다.
"비밀을 알려줄게. 사실 난 젤리가 아니야. 보시다시피 곰이라고."
매장에서 자신을 데려간 남자와 행복한 삶을 꿈꾸던 도넛이 자신이 먹힐 운명이라는 걸 알고 놀랐던 그림책 장면이 떠올랐다. 핀쿠션이나 차량용 방향제로 자신을 살려 둘 것을 제안하던 도넛은 결국 남자를 설득해 그의 애완도넛이 되어 함께 행복하게 살게 된다.
우리 집 반려견 '뽀식이'는 강아지 카페에 가도 마음껏 뛰놀지 못한다. 한 시간 내내 내 다리에 딱 붙어 덜덜 떨다가 개아련 표정을 지어 결국 나를 설득해 집으로 돌아오게 한다. 어쩌면 녀석은 자기가 개인줄 모르기 때문에 나에게 계속 어필한 걸지도 모른다.
"엄마, 여기 개들이 너무 많아서 무서워요, 우리 그냥 집에 가요."
내가 젤리인지 곰인지, 도넛인지 방향제인지, 개인지 사람인지. 정하는 건 결국 자신이다. 젤리이면 어떤가? 자신이 곰이라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면 젤리 봉투 안은 알록달록한 젤리숲이 된다.
초록색 곰의 미소에 요즘 내 달달한 마음이 담겨 있다. 남들이 나를 뭐라고 부르든 요즘 나는 작가로, 훌라 댄서로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동안 젤리인 줄 알았는데, 나는 곰이었다.
작품 <달콤한 상점> 김지은
큐레이션 @gonggan.goyoo #공간고유
<고유한 순간들-그림을 보고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