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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졸여지던 날

마음껏 슬퍼하지도 못하고

by 실버라이닝

엄마가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최근 암환자가 부쩍 증가한 원인으로 코로나 백신이 의심된다고 주장하는 영상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영상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엄마는 내가 곁에 온걸 그제야 눈치채고 말을 꺼냈다.


코로나 백신 괜히 맞았나 봐. 나도 요즘에 계속 오른쪽 어깨랑 팔이 아프고 등도 아프고, 소화도 안되는데 유방암 증상이랑 다 겹쳐.


또 시작이다 엄마, 엄마 오른팔 투석해서 아픈 거 아니야? 작년에 혈관 새로 연결해서 피부가 땅겨져서 한동안 아플 수 있다고 했잖아. 그리고 소화 안 되는 거랑 등 아픈 건 투석 시작하고 내내 그랬는데 왜 갑자기 암이야. 아니라니까. 자꾸 그런 거 보지 말고 건전하고 재밌는 프로그램 좀 봐 엄마.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은 형사가 다른 사고현장 자료를 살피듯 엄마는 다음 영상을 시청하기 시작했다. 유방암 환자의 치료 과정에 대한 채널이다. 옆에서 들리는 소리만으로도 마음이 심란해져서 엄마 방을 말없이 나와버렸다. 대화를 이어가며 마음을 풀기보다 상황을 피하고 대화를 중단하는 게 엄마와의 불편한 소통에 대한 나의 해결방법이었다.


엄마는 다음 날 암검사를 받고 왔다. 검사를 하는 사람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며 엄마는 또다시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검사 한 두 번 받아보니. 검사하는 사람 표정만 봐도 이제 알아. 결과 나오면 연락 준다는데 아무래도 맞는 거 같아.


설사 맞다 하더라도 미리 걱정하는 건 감정소모일 뿐이라는 생각에 엄마의 대화를 잘라버리고 다른 대화로 도망갔다. 엄마는 더 이상 암 검사에 대한 이야기를 잇지 않았다. 그리고 약 일주일 후 그 주제의 대화가 필연적으로 이어졌다. 엄마의 말이 맞았다. 유방암이었다. 이제 필요한 건 엄마가 다니는 대학병원에서 좀 더 자세한 검사를 받고 증상에 맞는 치료방법을 선택해서 진행하는 일이라고 안내를 받았다. 집에 돌아와 방에 누운 엄마는 말이 없었다.


그날, 엄마는 울었던가? 나는? 그 부분에서 기억이 끊긴 걸 보면 내 뇌가 그 순간을 얼마나 싫어했는지 짐작이 간다. 아마 울지 않았던 듯싶다. 나는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상황을 정리해 주고 깔끔하고 단순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엄마를 이끌었다. 1단계. 의사를 만난다. 2단계. 설명을 듣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 한다. 3단계. 결과를 받아들인다. 아직 나빠진 건 아무것도 없다. 치료받을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기로 하자. 수술받을 수 있는 돈이 있고 엄마를 돌볼 수 있는 내가 있고 아이들도 제법 컸으니 그것들로 감사하자.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과 자신의 인생에 또다시 닥친 불운 앞에서 한없이 무기력해져 있는 엄마에게 파이팅만 외쳐댔다.


그땐, 그랬다. 슬퍼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을 것 같아서. 슬픔이 더 큰 슬픔의 마중물이 되어 새로운 물길을 열 것만 같았다. 물길을 아예 막아버리고 못을 만들어 슬픔을 가두고 증발되게 두면 사라질 줄 알았다. 그럼 물이 고인 곳 주변의 꽃과 나무들이 자라 예쁜 호수가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슬픔은 고여서는 안 되었다. 졸이고 졸여져서 쓴 맛의 진액만이 끈적하게 엄마와 나의 심장에 눌러 붙었다.


그때야 말로 슬픔을 슬퍼하기 딱 좋을 때였는데. 그때 아니면 언제 그 말을 할 수 있었던가. 얼마나 속상하냐고, 얼마나 슬프냐고, 어쩌면 좋으냐고. 복잡한 심경을 안고 있는 엄마의 슬픔을 막아버린 건 엄마의 의지가 아니라 철저히 우리의 강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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