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은 재능이 아니라 연습
항암 치료는 암세포를 죽이기 위해 몸에 필요한 착한 세포들이 희생해야한다. 가능하면 하나의 세포가 수백 개의 암세포를 끌어안고 낙화하기를 바랐지만 한 개의 암세포에 수백 개의 선한 세포가 타들어갔다. 엄마는 11월의 낙엽처럼 말라갔고 항암 부작용으로 머리카락이 모두 빠졌다. 시각적으로 사람이 죽어가는 걸 목도하는 과정, 그게 내가 기억하는 간병생활이었다.
힘든 투병에도 엄마는 목욕을 좋아했다. 조금의 기운이 남아 있을 때까지도 대중목욕탕에 다녔는데 기운이 아닌 머리칼이 없어지자 대중목욕탕을 끊었다. 수술이 잦아지고 감염 위험 때문에 샤워도 거의 할 수 없었고 스스로 씻는 일조차 어려웠지만 그럴수록 엄마는 목욕을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나는 엄마의 마른 몸을 보는 것이 괴롭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엄마의 간절함을 자주 외면했다. 엄마의 목욕을 도와주는 일은 단순한 육체노동을 넘어 슬픔과 두려움을 마주해야 하는 일이었다. 한 번의 목욕에 한 걸음씩 죽음에 다가가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우연히 1인 세신샵을 알게 되었다. 주저 없이 방문했고 엄마는 만족했다. 엄마는 세신사가 참 친절하고 다정하다며 항암 하면서 이렇게 밝고 재미있는 분은 처음 봤다며 자기를 칭찬하더라고 자랑했다. 엄마가 세신사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내가 해주었더라면, 생각만 했다. 그 후로도 여러 번 엄마와 세신샵에 다녀오는 길에 세신사가 건네준 다정한 말과 손길에 좋아하는 엄마를 보며 세신사가 고마우면서 내가 왜 그 자리를 채워주지 못하는지 자책과 고민이 동시에 들었다.
남보다 못한 존재. 그 다정한 말 몇 마디를 못해서 사무치는 후회의 날들. 나는 왜 그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내가 살아야겠어서 후회를 떨쳐야겠어서 고민 끝에 이유를 찾아 내 마음에 욱여넣었다. 그래. 엄마가 아프기 전에 우리는 그렇게 대화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인 걸로.
사랑한다, 괜찮냐, 고맙다는 말을 평생 연습해보지 못한 두 사람은 갑자기 달라질 수 없었다. 아주 노력을 안 한 건 아니지만 엄마가 아프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살가운 모녀가 되는 건 쉽지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엄마를 뒤에서 앉아주는 일조차 커다란 용기가 필요했던 나였고 갑자기 백허그를 한 딸의 모습에 당황해 순간 얼음이 된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엄마였다.
그러니, 굳이 이제 와서 남은 사람들, 오늘을 살고 있는 나와 모두에게 같잖은 조언 한마디 하자면 아프지 않을 때 서로가 곁에 있을 때 일상에서 살가운 대화를 해보려 노력하라는 거다. 영어공부나 운동, 독서만 루틴에 넣지 말고 다정한 말하기 연습을 해야 한다는 거다. 아무리 행동이 영혼의 언어라지만 육체의 언어가 먼저인 거다. 내가 해주고 싶은 말이 아니라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한 번씩 해주자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