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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버라이닝 May 02. 2024

순한 맛 행복

조식뷔페 환영 댄스

모두가 행복했던 아침 식사를 거의 마칠 무렵 예기치 못한 환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직원들이 아이들을 향해 레스토랑 유리문 밖 테라스로 나오라는 손짓을 했다. 영문을 몰랐지만 분위기로 봐선 왠지 즐거운 일이 있을 것 같았다. 호기심 가득 기대를 안고 아이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갔다. 우리 멤버 중에서도 초등학생 남자아이 두 명과 여자아이 한 명이 달려 나갔다. 직원들은 아이들에게 하와이 꽃목걸이를 걸어주며 옆으로 나란히 서게 도와주었다. 직원들 사이사이에 아이들이 서자 다 같이 손을 잡고 식당 안의 가족들을 향해 인사를 했다.


곧이어 빠르지 않지만 경쾌한 하와이 음악이 흘러나왔다. 직원들은 아이들을 양 옆으로 바라보며 춤을 추었다. 아이들에게 함께 따라 하라고 눈짓을 보내자 아이들이 눈치를 채고 곧바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음악의 규칙적인 박자에 맞춰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가는 동작이 반복되었다. 손을 앞으로 향해 들며 환호를 외치고 박수를 치는 게 다였지만 아이들과 식당 안 가족들이 웃으며 즐기기에 충분한 군무였다. 그 순간, 우리는 단순히 고객이 아닌 손님으로, 진심으로 환영을 받는 느낌을 받았다. 외국에 있어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외국인 친척들을 만난 듯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음악이 끝나자 직원들이 아이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인사를 나눴다. 아이들과 가족들 모두 예상치 못한 선물 같은 공연에 흥분되었다. 함께 사진을 찍고 까르르 웃다 보니 어느새 더부룩한 배가 벌써 조금 소화가 되기 시작했다. 함께 춤을 춘 직원들은 바로 앞 리조트 수영장으로 돌아가 각자의 자리를 지켰다. 아이들은 잠시 후 수영장에서 직원들과 다시 만났고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낯선 곳이 어색했던 아이들도 편한 마음으로 물놀이를 시작했다.


조식 깜짝 공연 말고도 호텔 어느 곳이든 직원들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응대했다. 특히 모두 여유롭고, 서두르지 않는 모습은 나를 편안하게 해 주었고 사이판의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도록 도와주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모두 하느라 1분 1초를 쪼개 살던 시절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 만에 사이판의 속도에 적응해 가고 있는 내가 보였다. 모두, 여행이라는 핑계 덕분이었다.


감정에도 맛이 있다면 그동안엔 자극적인 감정을 맛보고 살았다. 강한 괴로움과 슬픔이 지나간 후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 짧은 시간에 극렬한 즐거움을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러니 롤러코스터처럼 감정들은 극과 극을 오르락내리락했고 오히려 다가올 슬픔과 괴로움에 대한 불안과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을 낳았다. 그런데 사이판에서의 감정은 순한 맛이었다.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느슨하게 세상을 바라볼 때에야 느낄 수 있는 순한 미소, 순한 기쁨, 순한 바다, 순한 걸음.


여행을 마치고 여전히 사이판의 기억은 직원들의 환대와 너그러운 미소로 가득하다. 느긋하게 추던 음악처럼 화려하지 않고 무겁지 않은 순한 맛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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