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o, my life!(17)
대필작가의 변
- 미국에서 있었던 일들은 주로 사람들을 만난 이야기나 짧은 에피소드들이 많아서 본의 아니게 글 한 편의 양이 상당히 줄어들게 되었어요. 완전히 동떨어진 이야기들을 한 곳에 묶어 놓기도 그래서요 ;ㅅ;
할아버지의 기억이 종이비행기처럼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날아다니다 보니, 먼저 알려주신 것보다 더 시간적으로 앞서는 이야기들을 불쑥 꺼내시곤 하셔서- 정리에 조금 애를 먹고 있습니다. 향후에는 그냥 시간순으로 정리하는 건 포기해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굵직한 줄기는 내버려두고 이후 에피들은 따로 엮어볼까 합니다.
그리고 요즘... 대필작가가 본업인 회사일+저질 체력으로 허덕이고 있습니다 ㅠㅠ
넓은 아량으로 기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짧지만 자주 올리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한국에서 온 젊은 군인의 눈에 미국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생활이 풍요롭고 여유가 넘쳤다. 이런 나라가 정말 있구나 싶었다. 거리에는 신식의 화려한 상점들이 즐비했고 우리 돈으로 300만 원 이상 하는 코트도 아무렇지 않게 걸려 있었다. 가격도 그렇지만 물건들이 모두 새 것이라는 것도 놀라웠다. 어딜 가든 중고품이 더 많던 우리나라와는 사뭇 달랐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하니 저녁 먹고 시내 구경만 해도 시간이 훌쩍 갔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시내 거리 곳곳에는 아편쟁이들과 부랑아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그들은 초점 없는 눈으로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1 페니를 구걸하며 행인들의 옷자락을 잡았다. 밝은 쇼윈도 불빛 아래 비친 그들의 빈곤은 상대적인 것이라 더욱 어둡고 무기력해 보였다.
사기꾼과 불량배도 도처에 있었다. 하루는 YMCA 호텔 로비에 앉아 있는데 어떤 사람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러더니 번쩍거리는 싸구려 시계를 보여주면서 자기가 멀리서 왔는데 돈이 떨어졌으니 좀 사 달라고 했다.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활개 치던 ‘네다바이’였다. 네다바이는 겉만 번지르르하고 쓰지도 못할 물건 등을 속여 파는 사기꾼의 일종이다.
내 시계를 보여주면서 시계가 있어 안 산다고 했지만 끈질기게 사라고 졸랐다. 호텔 매니저가 쫓아와서 나가라고 하니 그제야 슬금슬금 달아났다. 이후에도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는데 다들 어디서 수업이라도 받는지 수법이 동일했다. 그중 하나는 호텔 직원에게 한바탕 욕을 먹고 도적놈 소리까지 듣고서야 내빼기도 했다.
또 어느 날엔 사복으로 거리를 걷는데 스쿠터에 애를 태운 여자 둘이 옆으로 따라붙었다. 그녀들은 내게 ‘외로워 보이는데 저기 가서 커피 한 잔 씩 하자’고 꼬드겼다. 싫다고 하니 그럼 자기들끼리 가서 먹게 돈을 좀 달라고 했다. 아이까지 데리고 다니며 구걸하는 꼴이 보기 싫어 안 된다고 하자 그중 한 명이 때릴 듯이 손을 치켜드는 게 아닌가! 괜한 다툼을 만들기 싫어 서둘러 자리를 피해 버렸다.
좋았던 기억만큼이나 이렇게 불유쾌한 경험들도 아직까지 뇌리에 강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당시 미국이 우리나라는 물론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잘 사는 선진국이었음에도, 그 안에 여러 가지 어두운 단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던 까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