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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필작가 Sep 04. 2021

세단 타고 등교하기

Bravo, my life!(19)

대필작가의 말

벌써 9월입니다. 시간 가는 게 너무 빨라 어지러울 지경이네요.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빨리 가도 강렬한 추억은 희미해지지 않는 모양입니다. 60년도 더 된 일이지만 수많은 디테일이 살아 있는(?) 할아버지의 이야기. 오늘은 미국에서 훈련받으시던 시절 에피소드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육군병기학교로 가는 날. 아침을 간단하게 먹고 트래비스 비행장으로 갔다. 안내소에서 ‘워싱턴 디씨로 가는데 대기소가 몇 번이냐’고 물었더니 ‘투위-’라기에 gate 12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시간이 다 되어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점점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지나가던 청년에게 여기가 워싱턴으로 가는 게이트가 맞냐고 물었더니 그는 시계를 보곤 자기를 따라오라면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퉤니(20)를 투웨브(12)로 잘못 들었던 것이다. 가까스로 따라갔더니 호명을 하고 있기에 겨우 비행기에 올랐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그 청년에게 고맙단 말을 하지 못한 사실이 생각나 미안해졌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어찌 됐든 무사히 워싱턴에 도착했다. 트랩을 내려가는데 누군가 "미스터 안!" 하고 소리쳐 불렀다. 지금은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대위가 운전수와 함께 서 있었다. 이때 난생처음 세단을 타 보았다. 애버딘 BOQ로 가는 몇 시간 동안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는데 말이 꽤나 잘 통했다. 무엇보다 그의 영어가 매우 잘 들렸다. 당신이 말하는 건 알아듣기 쉽다고 했더니 자기가 우리나라 동해전선에서 2년을 있었다고 했다. 원래 말하는 방식이 그런 건지 아니면 일하는 동안 우리가 알아듣기 좋게 명확하고 깔끔해졌다는 건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그는 내가 육군병기학교에서 교육받는 동안 나를 많이 보살펴 주었다. 내 성적이 좋으면 나보다 더 기뻐해 주기도 했다.


 1961년 8월, 육군병기학교 교육을 마치고 애니스턴 앨러바머의 미 육군 전차창에서 2주 간 현장 교육을 받게 됐다. 아침 7시만 되면 미군 상등병이 청색 내빈용 세단을 가지고 와서 빵빵, 클랙션을 울려 불렀다. 내가 나가면 그는 문을 열어주고 볼륨이 적당한지 물어가며 음악을 틀어 주었다. 세단을 타고 9군 사령부에서 전차창까지 가는 8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속도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고, 차 소음도 없이 바퀴 지면에 닿는 소리만 삭- 삭 들려왔다. 이 차가 달리는 게 아니라 나는 건가 싶은 기분마저 들었다. 차에 내빈용 표지가 달려 있어서 그런지 주변 차량이나 길거리 사람들이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낯선 타국에서 받는 내빈 대접이 싫지만은 않으면서도 그만큼 몸가짐을 조심하고 열심히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조금 긴장이 됐다.


 현장 교육은 견학으로 시작됐다. 시설을 둘러보다 궁금한 것은 배당받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됐다. 그러면 대부분 친절하고 손에 잡힐  알려 주었다. 포탑 모형 등이  갖춰져 있어 실제로 만져 보면서 작동 원리를   있도록 되어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포탑에 가장 중요한 파워팩이라는 장치를 분해, 결합하는 교육을 받기도 했다. 교관이 시키는 대로 작업을 하고 결합이 완료되면 시동을 걸어본  작업자들의 이름을  붙이는 방식이었다. 만약 엉터리로 결합해서 가동이  되면 교관한테 보고하고 점검을 받아야 했다. 대략 15 조가  훈련을 받았는데 어느  교관이 작업  너트  개를 주웠다. 전수 조사 끝에 결국 범인이 잡혔고, 그는 그날로 퇴교 조치를 당하고 말았다. 사정이 딱하면서도 무기를 다루는 곳이니만큼 실수나 거짓말에 엄격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정신을 바짝 차렸다.


 페인트를 벗기고 다시 칠하거나 포탑 운반 크레인을 움직이는 수신호도 연습했다. 쉬울 것 같지만 특히 수신호는 커다란 포탑과 크레인 대상이라 그리 녹록하지 않았다. 긴장도 되고 타이밍 맞추는 것도 어려웠다. 어떤 이는 정지 수신호 타이밍을 맞추지 못해 땅에 포탑을 내리꽂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인 상황에 따라 훈련을 봐주는 일도 있었는데 미국은 차가우리만큼 엄격했다. 일과가 끝나면 지쳐 쓰러졌다가도 다음날 아침이면 뒤처지지 말아야 한다는 의지를 불태우며 일어나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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