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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김현영 Aug 09. 2021

무기화된 남근숭배문화를 비무장지대로

한겨레 세상읽기 2021.8.10

인류학자 크리스틴 헬리웰이 현지조사를 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보르네오의 게라이족 마을에 머물렀던 1985년 9월 즈음의 일이다. 마을에서 작은 소동이 일어난다. 남편과 사별하고 연로한 어머니와 자매, 아이와 함께 살던 여자의 집에 동네의 한 남자가 밤늦게 창문으로 침입한다. 남자가 모기장 안에 잠들어 있던 여자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깨우며 “조용히 해”라고 하자 여자는 그를 세게 밀쳤고 남자는 발이 모기장에 걸려 휘청거리다가 겨우 빠져나갔다. 여자는 큰 소리로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남자의 뒤를 쫓았고 잠에서 깬 몇몇 이웃이 그 광경을 목격했다. 헬리웰이 이 사실을 알게 된 건 다음날이었다. 마을 여성들은 수확한 벼를 함께 타작하며 전날 밤 소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여성이 창문을 기어오르는 남자를 흉내내자 요란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어제 일어난 일은 강간미수라는 끔찍한 범죄가 아닌가. 이 왁자지껄한 분위기에 동참할 수 없었던 헬리웰이 묻는다. “어떻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웃을 수 있죠? 그가 시도한 건 아주 나쁜 일이잖아요?” 그러자 모여 있던 여성 중 가장 나이 든 여성이 대답했다. “단지 어리석은 일일 뿐이야.”(not bad, simply stupid) 헬리웰은 모기장 안에 있던 여자에게 재차 물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원치 않는 섹스를 하려고 시도했고, 그건 당신에게 상처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여자는 이렇게 답한다. “크리스틴, 그건 그냥 페니스인데 그게 어떻게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때서야 헬리웰은 자신이 페니스를 매우 위협적인 ‘무기’로 인식하는 문화권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헬리웰은 강간을 여성을 더럽히고 모욕하고 복종시키고 궁극적으로 파멸시킨다고 생각하는 문화권에서 살고 있는 반면, 인도네시아 게라이족 여성들은 페니스로부터 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매우 낯설어했다. 게라이족의 관점에서 페니스는 존경도 숭배도 선망도 공포의 대상도 아니라 그저 돌출된 생식기의 형태일 뿐이며, 돌출 여부가 여자와 남자의 성적 차이를 확증하는 기능을 하지도 않는다. 게라이족에게 남성과 여성의 생식기를 그려달라고 하니 기본 구조와 형태는 동일하게 배치만 다르게 그렸다. 심지어 이들은 헬리웰의 몸을 보았음에도 여자가 맞는지 혼란스러워했다. 게라이족에서 여성이란 임신·출산을 하는 존재이자 쌀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전수하는 존재로 정의된다. 헬리웰은 키가 크고 머리가 짧고 귀걸이를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쌀’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헬리웰은 마을 사람들이 분명히 자신의 가슴과 생식기의 형태를 보았지만 여전히 여자인지 여부를 의심스러워하다가 마을에 살면서 습득한 벼 품종에 대한 지식을 언급했을 때에야 여자로 인정받았다는 경험을 털어놓는다.

페니스는 그냥 페니스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게라이족의 태도와는 달리 현대사회의 성문화에서는 페니스의 크기에 집착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문화가 점점 더 확산되고 있다. 지금 만들어져 유통되고 있는 19금 콘텐츠에서는 대부분 크고 굵고 단단한 페니스가 강조된다. 페니스의 크기와 강직도는 곧 남성적 힘을 상징하며 성적 만족을 줄 수 있는 능력 그 자체로 언급된다. 그러나 항상 이랬던 것은 아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반대였다. 그리스 남성은 작은 음경을 가진 고상한 사람들로, 거대한 남근은 노예나 야만족이나 가진 것으로 묘사되었다. 큰 페니스를 강조하는 문화는 대부분 몸으로부터 분리되어 남근만이 남는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남근석과 남근상 등은 자연의 힘을 제어하려는 종교적 제의행위에 동원되는 문화적 상징물의 흔적들이다. <페니스, 그 진화와 신화>의 저자 에밀리 윌링엄은 “우리가 페니스의 크기, 힘, 모습에 집착하는 것은 지금은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상징적인 용도의 문화적 잔재다. 페니스가 이러한 문화적 짐을 지고 다니는 건 페니스의 잘못이 아니다. 우리의 뇌가 그 짐을 지웠고 따라서 짐을 내려놓는 일을 할 수 있는 것도 우리의 뇌다”라고 쓴 바 있다. 페니스가 커봤자 몸 전체보다 클 리 없고 페니스 없이도 성적 만족에 이를 수 있는 방법은 많다. 그러니 페니스의 크기에 대한 집착을 멈추고 페니스를 지배와 침입, 그리고 폭력을 위한 도구처럼 묘사하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은 어떨까. 무기화된 남근숭배문화를 비무장지대로 만들자는 얘기다. 이걸 남성혐오로 받아들이면 답이 없다.


원문보기:

https://m.hani.co.kr/arti/opinion/column/1006975.html?_fr=fb#cb#csidxb8263b07b4760738a54caeb96a1ad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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