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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김현영 Apr 12. 2022

드디어 아는 것이 힘이 된 날

네 알바야?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누가누가 생리를 시작했다는 소문이 슬며시 돌았다. 몇몇 못된 남자애들은 괜히 큰 소리로 누가 생리 시작했다고? 뭐 이런 소리를 해댔다. 못된 여자애였던 나는 그게 니네가 알 바냐고 더 크게 목소리를 높였다. 생리하냐고? 가 알바야? 알아서 뭐하게? 왜 너도 하고 싶어? 니가 알바야? 니가 알바냐고? 이렇게 말하다보니 그 말이 입에 왠지 딱 붙어서 니가 알바야? 너 어디서 알바해? 뭐라고? 안들리는데 알바한다고? 그렇게 싱글싱글 웃으면서 계속 구석으로 몰아붙이면 상대는 도망쳐버렸다. 그때 알게 된게 말싸움에서 승기를 잡는건 논리가 아니라 기세와 억양, 그리고 반복이라는 거였다...


초등학교 5학년부터 아이들은 성별을 갈라 따로 놀기 시작했고 서로를 의식하면서도 섞이지는 않았다.  인기투표가 가끔 있었고, 원하는 짝을 써내라고 한 적도 하는 와중, 꽤  풋풋한 호감이 오간 적도 있어서 싸움질만 한건 아니었다. 다만 그 호감은 후다닥 와장창 깨지기도 그만큼 쉬웠다. 면면히 흐르던 팽팽한 기류는 중에 생각해보면 명백하게 성적 '긴장'감이었다. 욕망이라기보단 긴장에 가까운 감정들.


애들 사이에서 성은 때론 은밀하게 때론 노골적으로 화제의 중심이었다. 동성 집단이 모여 자위 비슷한 걸 시도한 기억도 있고, 좀 더 어렸을 때는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즈음에는 서로 다른 몸을 가진 이성 친구와 서로 몸을 까보기도 했다. 그때는 전혀 성적 긴장같은 건 없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갑자기 모든 지난 에피소드들이 쏟아질 듯 이해가 되어서 그전의 대체로 평화롭고 안온한 우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서로의 흑역사를 기억하는지조차 알 수 없게 멀어진 유소년소녀기의 섹슈얼 액트를 공유한 친구들은 사실 다들 기억할테지만 끝끝내 서로에 대해 아는 척 할 수는 없었다.


알지만 알면 안되는 것. 그것이 성이었다.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성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여 집에 있는 백과사전과 과학동화와 과학만화책 중 성에 대한 부분을 마르고 닳도록 읽고, 결정적으로는 옆 집 아저씨가 이사갈 때 내놓은 책박스에서 몇 권의 꾸금 소설책과 잡지 등을 몰래 빼내와서 섭렵한터라 공식 비공식 지식을 꽤나 다양하게 아는 상태였다. 하지만 이 지식들은 당최 쓸데가 없었다. 하지만 과연 아는 것은 힘이 되는 때가 오고야 말았는데...


여름이었다. 학교에서 일찍 돌아와 동네 골목을 들어설 때였다. 웬 아저씨가 잠깐 이리와보라며 손짓을 했다. 그 골목에서 제일 큰 단독주택의 대 앞 계단 위로 아저씨는 나를 불렀다.


"일루 잠깐 와볼래" 


나는 그 커다란 집 안이 늘 궁금했기 때문에 아저씨의 부름에 응했는데 아저씨가 보여준 건 단독주택 안쪽 풍경이 아니었다. 아저씨는 나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알록달록한 잡지를 짠 펼쳤다.


"아저씨가 좋은거 보여줄게"라면서 펼친 그 페이지에는 여성의 외부생식기가 클로즈업되어있었다.  


나는 무척 궁금하고도 이상했는데, 아니 그게 아저씨한테 있는 것도 아니면서 왜 나한테 아는척을? 왜 니가 자랑을? 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반 남자애들이 생리중이냐고 여자애들을 놀리는 거에 뜩 성이 나있기도 했다. 생리중이면 뭐, 그게 니 알바야? 그 날도 그렇게 빡쳐서 한 명을 벽에 몰아세우고 돌아오는 중이었는데 아저씨가 "좋은거 보여줄게"라며 중철본 잡지의 가운데 정수를 차지하고 있는 비로 페이지를 내 눈앞에 펼친 이다.


하. 이 아저씨 보게. 그때 나는 옆집 아저씨가 내놓은 박스에서 꺼내온 잡지에서 그와 유사한 페이지를 이미 본 터였다. 그리고 그게 어디를 지칭하는지에 대한 지식도 각종 백과사전을 통해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반응이 없자 아저씨는 재차 물었다.


"너 이런거 본 적 있어?"  


하아. 당연히 있지. 하지만 잡지를 본 건 비밀이니까 이렇게 대답했다.


 "이게 저한테는 있지만 아저씨한테는 없는걸로 아는데요"   


잠깐 가만있다가 아저씨는 또 물었다


 "그럼 네 거 본 적 있다는 거니?"


아마 조금 더 있었다면 내 걸 보여달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아저씨는 아마 지나가는 초등학생 여자아이들에게 이 사진을 보여주면 얼굴을 히며 도망가리라고 기대하고 괴롭혀왔던 듯 했다.


나는 "그게 아저씨 알바는 아니지 않냐"고 쏘아붙이고는 다시 총총 집으로 돌아왔다.


되돌아보면 당시의 나는 무척이나 귀여웠네. 여자애가 한마디를 진다거나 귀엽게 생겼는데 왜 이렇게 애교가 없냐며 아무도 나를 귀여워해주지 않았지만. 어른이 된 내가 저때의 나를 만났다면 무척이나 귀여워해줬을듯. 물론 나는 싫어했겠지... 귀여워하는 어른을 귀찮아하며 싫어하는 어린 시절의 나라니 생각만해도 귀여워죽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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