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잔재미양 Nov 17. 2022

온기의 온도

날카로운 바람에 비해 은은한 햇살이 따스하다. 초겨울. 그늘이 추워 앞 단추를 채웠다가 살짝 비켜서서 쬔 햇살이 덥게 느껴졌다. '너무 껴입었나...' 아이의 하교를 기다리며 멍하니 벤치에 앉아 있자니 코 끝이 조금씩 시려온다. 주머니 속 손을 코에 올려본다. 아직까지는 스스로의 온기로 따스함을 유지할 수 있는 날씨. 이런 날씨가 참 좋다. 이렇게 웅크리고 앉아있노라면 지난 계절동안 흩어졌던 생각들이 이주를 끝낸 철새처럼 모여든다. 작년 이맘때쯤 그렇게 쌓인 생각들을 글자로 옮겨 화면에 물어다 날랐다. 공개글은 처음이었고 조회수가 올라가는 걸 실시간으로 관찰하며 신기해했다. 차가운 날의 기억은 이렇듯 온도와 함께 남는다.


대학을 다니며 얻은 옥탑방은 추웠다. 학교는 험하기로 유명한 산 아래 동네에 있었는데 눈도 빨리 내리고 4월이 되어서야 녹았다. 반찬집과 하숙집, 뚝배기에 청국장 하나만 파는 천장이 낮은 음식점을 지나면 마을버스 종점이 나오고 그 옆에 3층 나의 집이 나타난다. 타지에서 아버지가 어렵사리 전세금을 마련했고 간신히 월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걸어서야만 나왔던 나의 보금자리는 긴 하루가 끝나고 돌아갈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초라하지 않았다. 보일러는 별 효과가 없었기에 누에고치처럼 이불로 몸을 돌돌 말면 조금씩 몸이 녹았다. 입안 가득 바람을 머금었다가 후- 불어 따뜻한 입김이 뭉개 뭉개 피어올라 천장 어딘가로 사라지는 걸 바라보다 잠들었다.


첫째가 태어나고 자란 첫 공간은 웃풍이 드는 결로가 심한 집이었다. 집에 대해 별달리 고민하지 않았기에 남편이 살던 작은 빌라가 신혼집이 되었다. 다른 건물들 사이에 낮게 위치해 그늘져서였는지 집 안 공기가 축축했는데 잊을만하면 천장 구석에 곰팡이가 피었다. 덕분에 신생아를 데려온 뒤에도 아침, 저녁으로 현관문이며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야 했다. 아기를 돌돌 싸매서 안쪽 옷방에 뉘이고 나머지 공간을 개방하면 11월의 차가운 바람이 집안의 따스한 바람을 만나러 서둘러 들어왔다. 여는 소리가 요란한 나무 새시 틈새로 유령 같은 바람소리가 울려 퍼지곤 했다. 손주를 보러 오신 어른들이 '아기는 원래 춥게 키우는 거야.'라며 위로와 같은 말을 건넸다.


두 아이를 낳고서야 들어간 첫 아파트 생활도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하던 다소 쌀쌀한 날이었다. 언덕길이 심하게 경사져있던 오래된 동네 꼭대기에 이사를 간 것이다. 거리가 멀진 않았지만 학교가 아랫길 초입에 있었기에 첫째는 거칠게 몰아쉬는 숨 사이로 연신 '힘들어'를 속삭였다. 찬바람이 쌩쌩 불기 시작하던 날씨에 몇십 분에 한 번씩 지나가는 자동차를 보려고 오뚝 서버린 둘째도, 꼭대기 집보다 더 높은 언덕에 있던 둘째의 어린이집 계단도 이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찾아왔을 때쯤에서야 수월해졌다.


사는 곳은 바뀌었지만 계절은, 계절이 품게하는 마음은 한결같았다. 사계절을 차근히 지나친 작업들, 아이를 등원시키고 샌드위치 가게에서 시작한 글쓰기도 이런 날에서 비롯되었다. 코 끝이 얼던 차가운 방, 겨울에 맞이한 첫 육아, 찬바람이 몰아치는 언덕길 먼발치에서 울던 느린 아이, 못다 한 작업, 진전이 없던 이야기... 보이지 않던 미래보다 지나온 과거가 더 가까웠던, 후회와 연민으로 가득했던 순간들이다. 조금이라도 덜 입어야 하는 여름보다 한 꺼풀이라도 더 입혀야 했던 고민을 기억하 듯, 수월하던 때 보다 고생하던 날들이 깊이 남아 기어코 단단함으로 자리매김했음을 실감하기 때문일까. 그늘에서 햇살로 가듯, 한 발짝 차이로 추위에서 따스함으로 바뀌는 이 계절처럼 힘듦과 좋음이 나란히 남아있다. 계절은 돌아왔고 나는 여전히 그리고, 쓰고, 쓰려고 하고 있다.


결로가 심하던 반지하 빌라의 사진을 보면 아기도 우리도 모두 옷을 툭툭하게 입고 있다. 넘어져 굴러도 아프지 않을 듯 푸근하게 웃고 있다.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질 것 같은 옥탑방 추위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유지하던 이불 속 어린 나의 체온은 소중했다. 입김 한 번에 부모님 얼굴이, 입김 두 번에 나의 미래가 피어올랐다. 언덕길 매서운 바람이 비로소 깨달아지고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던 아이의 눈물 콧물이 범벅이던 얼굴은 잊을 수 없다. 그 아이를 안아 몸을 녹여주던 내 품 속 온기도.


그 온기.

이 온기의 온도는 몇 도일까.

적당히 식은 미지근함일까 천천히 달궈진 따스함일까. 그 온도를 상상한다.


나름 혹독하던 계절 틈에 피워진 작은 모닥불 같은 기억들이다. 여름의 열기도, 봄의 푸근함도 아닌, 넉넉하고 편안하던 계절을 뒤로 해야만 만날 수 있는 그 온도에 두 손을 올려본다. 지금이라도 눈을 감으면 느낄 수 있다. 지키고 싶었던 마음을, 시릴 수록 두 손 가득 움켜쥐던 나 자신을. 그 온도로, 지금을 살아낼 수 있다. 지금의 작업을 한다.


작가의 이전글 말 없는 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