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들처럼
공부가 재미있지만 시험은 떨리고
돈은 벌고 싶지만 아무 일이나 하기는 싫다.
글을 쓰고 싶지만 공모전에 냈다가 떨어지는건 또 창피하고
불완전한 인간이면서 완벽이라는 교만을 꿈꾼다.
자꾸 뭐가 하고 싶다고, 하고 싶다고 노래를 하면서도 정작 해야만 하는 것 앞에서 꽁무니 빼는 사람.
아마도 이게 내 모습이었을 것이다.
최근에는 미치게 잠이 안 오고 취업걱정과 불안한 미래 생각에 걱정 근심이 똬리를 틀 때 유튜브에서 나오는 [서준맘]의 ASMR, 네일아트 한 손톱으로 플라스틱 병 두드리는 소릴 듣는다. 그 백색 소음이 나를 진정시키면서 스르르르 잠 드는 것을 돕는다. '항시적으로 눈물, 콧물이야.'라는 서준맘의 대사는 올해 내 마음속 최고의 명언이 되어 2000년대 초반 '어우~ 밥맛이야!'가 유행했을 때처럼 아무 상황에나 갖다 대고 '항시적으로~'라는 어구를 남발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내가 서준맘보다 더 즐겨보는 영상을 꼽으라면 단연 남자 아이돌 가수들의 데뷔 초 혹은 데뷔를 준비하며 찍은 영상들이다. (나도 여자라고 여자 아이돌은 안 보고 남자 아이돌만 골라서 보는 경향이 있다).
데뷔를 앞두는 아이돌, 그들은 왜, 무엇을 어떻게 준비 할까.
그들의 치열함과 열정을 나도 본받고 싶었다.
될지 안될지도 모르는데 엄청난 스트레스 속에서대체 왜 최소 몇 년씩 그 고생을 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 내고야 마는 그들의 열심과 노력을 매번 마주하며 감탄한다.
내가 덕질을 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왠지 아이돌 곁에 있으면 열정 또한 전염될 것 같은 요행을 바라는 마음도 있다.
작년 나의 세 번째 백수 초창기, 마음속 아이돌은 단연 'BTS'였다. 실로 함께 웃고 울었다. 뒷북이라면 뒷북이지만 정말 뒤늦게 7년 전 그들의 데뷔 영상을 보며 눈물까지 찔끔거렸었다. BTS들이 조금씩 군대를 갈 무렵, 공허한 마음을 안고 '세븐틴'의 팬이 되었다. 멤버 각자가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와 한 가지 목표, 가수로 데뷔를 하기 위해 열심히 연습을 하는 영상을 보았다. 세븐틴 구오즈 (95년생들)의 귀여움에 빠져들었다가 아스트로 문빈 (지금은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너무 슬픈 일이다)의 퍼포먼스에 매료되어 팬이 되기도 했고 '세븐틴'들의 이름을 다 외울 무렵에는 'NCT Dream'의 데뷔 초창기부터 'NCT127'까지 섭렵하게 되었다. 'NCT Dream'의 Candy Remake곡은 무한 재생으로 해 놓고 집에서 Olrando까지 왔다 갔다 하는 내내 왕복 4시간을 들은 적도 있을 만큼 아이돌의 에너지가 전달될 때 나도 의욕이 솟구친다.
이들 모두 지금도 잘 나가는 이름 있는 그룹이지만 내가 유독 그들의 데뷔 전이나 데뷔 초 영상을 돌려 보는 이유는 떡잎부터도 남달랐던 모습 때문이다. 촌스럽다고 말하지는 않겠다. 풋풋함. 하지만 영상을 보는 내내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다. 열정 말이다. 조금이라도 잘해 보고 싶은 마음. 그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 계속된 연습. 그리고 함께 돕는 멤버들이 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아이돌의 심정으로 작가 데뷔를 준비하자 다짐하게 되었다. 나에게 허락된 일을 하면서 말이다. 남동생 코코의 직업이 부러워 나도 미국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기왕에 취업을 할거 안정된 직장에 들어가 안정된 일을 하며 안정된 글을 써보자 하는 욕심을 부렸지만 안정된 직장에서는 나를 원하지 않았다. 일이 이쯤 되고 보니 차라리 이 상황이 또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무슨 기회였냐 묻는다면 잘 모르겠지만 하고자 한 것이 내 길이 아님을 깨닳을 기회 같은 것 이라 복잡하게 설명할 수 있겠다. 죽어라 했을 때 죽어도 안되는 것을 계속 해 대고 '스무쓰'하게 되는 것은 '에잇! 시시한 것' 하며 밀어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길이 있는데 가지 않고 매번 아스팔트 위에서 땅굴을 파고는 했던 삽질의 순간들이 생각났고 삽마저 빈약해 숟가락 같은것으며 긁고 있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무슨 코미디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았다.
너무 재미있는 장면인 것은 맞는데 내가 주인공이며 이것이 또 현실이 된다고 생각하니 반복되는 실수는 하지 말자는 지나간 내 마음이 슬프게 말을 걸어왔다.
공부가 재미있고 시험은 싫다면 그냥 배우는 기쁨을 꾸준히 누리면 되는 것이며 (똥통 대학원- 같이 일하던 미시간 앤아버를 들어갔다 졸업 못하고 나온 동료가 내가 나온 대학원을 그런 똥통 대학이라고 대놓고 말했었다. 사실이어서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 동료는 나중에 대학원 입학을 거절 당했다.-까지 졸업했으니 더 이상 누가 시험보라고 등 떠미는 사람도 없다).
돈은 벌고 싶지만 아무 일이나 하기는 싫다면 그 아무 일이 나에게 괜찮은 일이 될 때까지 열심히 하며 돈을 절약하면 될 것이다.
글을 쓰고 싶지만 공모전에 냈다가 떨어지는 것이 두렵다면 공모전에 내는것을 목표로 두지 말고 글을 계속 꾸준히 쓰는 방법을 찾아보면 될 일이다. 그렇게 글이 쌓이면 언젠가는 세상에 내 놓을 용기가 생기기도 하겠고, 계속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그냥 죽을때까지 혼자 쓰면 되는 것이다.
불완전한 인간이면서 안전한 완벽을 꿈꾸는 나에게 두란노 사랑연구소 바이블 칼리지 김숙경 선생님께서는 '여기까지 온것도 훌륭해. 너니까 합니다. 완벽이 아니라 진전입니다.'라는 메시지를 주셨다.
자꾸 뭐가 하고 싶다고, 하고 싶다고 노래를 하면서도 정작 해야만 하는 것 앞에서 꽁무니 빼는 나에게 '세상에 꼭 have to 해야 하는 일은 없어 그러니 너 싫으면 말아도 돼. 하지만, 모든 일에 대한 너의 몫의 책임은 반드시 있다. 물론, 모오~든 일에 책임이라는 훈장을 달고 다닐 필요는 없지만' 이라고 나의 좌뇌가 우뇌에게 말하는 소릴 옅들었다.
이참에 글 쓰는 것도 때려치우고 싶다는 못생긴 마음, 나는 백수이니 하며 점점 나의 생각과 시간까지 베풀고 나눔에 인색해져 가는 내 마음이 싫어질 무렵 어쩐지 지난시간 내가 써 놓은 글도 모두 밉고 시간 낭비 같다는 생각에서 다 지워버려야지 없애버리고 새로 써야지 하는 권태기가 또 왔을때 이상하게 이번 권태기때는 주저 앉지 않고 나를 일으키는 알수 없는 힘이 느껴졌다. 단단한 내 마음이 받쳐주는 소리였다. '너는 이게 왜 하고싶어?'
왜?
이유를 묻는 왜?를 계속 생각 해 보니 나에게는 이 왜?가 이유없는 물음이었다.
내가 최초로 이유없이 좋아 한 일 이었다. 못생기고, 촌스럽고, 돈도 안되면서 앞날이 불투명한데 내가 왜 얘를 데리고 다녀야 하지? 아직은 살짝 부끄러워서 누구한테 보이기도 겁나는데 이 나이먹어 이런애 만나면 헤어지라고 할까봐. 그런데 그때가 진짜 사랑이었던것 같다.
내가 글쓰기를 사랑하네. 성찰의 순간이다.
살짝 비전 있는 좀 세련되고 돈도 되고 키랑 다른 인맥도 좀 갖춘 어디 데리고 다녀도 폼이 나는 그런 글이 아니라 째끔 비전은 있는데 아직은 그걸 욕하는 사람한테는 못 보여주고 응원하는 몇몇 순수하신 분들에게만 공개가 되는 녀석. 내 진짜 돈벌이 직업보다 늦게 꾼 내 꿈, 현실의 나보다 어린 연하의 내 꿈이 보였다. (연하라기 보다는 내가 지금부터 먹이고 입혀야 하는 자식같은 꿈이다). 그러니 더욱 사랑하고 응원해 주어야지 하는 벅찬 마음이 밀려왔다. (물론 다 때쳐 치우게 될 어느날엔 이 글도 폭파시켜 버릴 수 있다).
이 모든 것 내 모든 글이 그리고 모든 노력이 아이돌 연습생의 배고픔의 시간, 촌스러움의 시간 모든 극복한 시간들의 으쌰 으쌰처럼 되기를 바란다. 음~ 나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뭐가 될 수도 있겠군. 그런데, 어떻게 되지? 내가 나를 도울 방법을 찾게 해 주시겠지. 어떤 먼지라도 나오는지 털어보자. 내가 내 연하남, 내 새끼 작가 연습생과 함께 쭉 같은 길을 가며 헤어지지 않고 손 꼭 붙잡고 얘도 먹이고 나도 굶지 않을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