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잠들면 나는 상자를 꺼낸다.
아주 옛날부터 나의 기분전환 아이템은 손톱 꾸미기였다. 당시엔 화려한 컬러의 네일은 지양하는 직업군에 속해 있어서 좀처럼 할 수 없다가 긴 휴가를 받거나, 기분이 영 안 좋을 때는 하루 만에 제거하더라도 난 샵으로 향했다. 그리고 최대한 화려한 색깔로 손톱을 꾸미고 나면 신기하게 기분이 풀렸다.
그러한 생활을 20년 가까이하며 지냈다. 나에겐 의식 같은 거였는데 아이가 생기자 분위기가 변했다.
나의 기분 전환의 아이템이었던 손톱 꾸미기는 아이 엄마에겐 사치였다. 그리고 일단 샵을 갈 수가 없다. 주변에 아이를 봐줄 부모님이나 지인이 계셔야 하고, 또 이런 소소한 행복을 이해해주신다면 가능하겠지만 그런 일은 쉽지 않다.
첫 아이가 태어나고 4개월쯤 되었을 때 거울 속 내 모습 때문에 좌절감이 몰려왔다. 아마도 평소에 나를 꾸미는 걸 좋아하는 성격이었기에 더 그랬으리라.
계속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아무렇게나 묶어서 틀어 올린 머리, 기초 화장품은 열심히 발랐음에도 이상하리만치 윤기 없어 보이고 푸석해 보이는 피부, 몇 개로 돌려 입는 늘 똑같은 홈웨어.
거울 속의 나를 한참을 바라보다 결심했다. 그리고 그날 밤 아이를 재워놓고 난 나만의 네일아트 상자를 꺼냈다. 그 속엔 내가 가끔씩 스스로 손톱을 다듬었던 재료들이 모두 들어있다. 실력은 없어도 도구는 프로급으로 준비하는 나다. 네일아트를 위한 거의 모든 도구와 재료가 들어 있다고 보면 된다.
긴 손톱은 스스로 감당하지 못해 늘 짧은 손톱을 유지한다. 살짝 길어 나온 손톱을 둥글고 균형 맞게 갈아낸다. 손톱을 감싸고 있는 큐티클을 깔끔히 제거하고 손톱 주변 굳은살을 갈아낸다.
그리고 손을 한 번 깨끗이 닦는다. 마지막으로 네일 리무버로 손톱에 남은 유분기까지 닦아준다.
내가 가진 컬러 중 가장 붉고 반짝이는 컬러 2가지를 선택한다. 그리고 제일 먼저 베이스젤을 바른다. 젤 전용 램프에 손을 넣고 구워낸다. 다음 2가지 색깔을 열 손가락에 고루 나누어 바르고 젤 램프에 또 구워낸다. 보통 컬러는 2번에 걸쳐 바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탑 젤을 바르고 굽는다. 그리고 손톱 위에서 딱딱하진 젤 매니큐어를 확인하면 마지막으로 리무버로 한 번 닦아 깔끔하게 마무리한다.
이렇게 스스로 손톱 가꾸기를 끝내고 나의 손을 봤을 때 난 너무 만족스러웠다. 전문가가 아니기에 결과물의 퀄리티가 좀 떨어지긴 하지만 내 손톱 위에 반짝이는 컬러들을 보는 순간 잘 꾸미고 어딘가 외출하는 기분마저 느껴진다. 그렇게 그날 밤 난 행복한 마음으로 눈을 감았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행복했던 마음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나의 손톱을 본 몇몇이들의 말 때문이었다.
"아이고 이제 편한가 보네. 손톱에 물을 다 들이고."
"아니 애 잘 때 같이 자야지 뭐 그런 걸 하고 있어."
"애 엄마가 잘하는 짓이다. 벌겋게 손톱이나 칠하고."
예쁘다고 한 말 뒤에 가시가 느껴졌던 건 나의 괜한 자격지심일까. 밤새 쪼그리고 앉아 서툰 실력으로 이리저리 만지고 발라 완성한, 날 행복하게 해 줬던 내 손톱이 몇 마디의 말로 마치 수준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부끄러워졌다. 애는 안 챙기고 손톱이나 꾸미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당장 지워야 할 것 같았으나 마음과는 다르게 볼 때마다 예뻐 보였다. 가끔씩 한 참을 손만 바라봤다. 서툰 솜씨지만 빨간색과 금빛 반짝이가 번갈아 발라진 내 손은 볼수록 참 예뻤다. 그래서 결국 지우질 못했다.
대신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손톱이 보이지 않게 말아 쥐었다.
그렇게 나의 기분 전환 아이템이었던 손톱 꾸미기는 감추어야 하는 아이템이 되어버렸다. 나는 그게 더 싫었다. 할 수 없게 된 것보다 감추어야 하는 것이 되어버린 게 더 싫었다.
어느 날 엄마랑 대화를 하다 엄마의 손톱을 바라보았다. 우리 엄마는 손톱이 참 예뻤다. 길쭉하고 봉긋했다. 가끔 엄마가 손톱에 매니큐어를 바르면 너무 예뻐서 수시로 엄마 손을 잡아서 쳐다보곤 했던 기억이 났다.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엄마 손보다 예쁜 색이 발라진 엄마 손이 더 좋았다.
그리고 엄마는 그 손을 부끄러워했던 적이 없었다. 엄마도 손을 다듬은 날은 당당히 나에게 주위 사람에게 손을 보여줬고 이모들이랑 함께 손톱을 가꾸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왜 예쁘게 가꾼 내 손을 부끄럽다고 생각했을까. 누가 뭐라 한 마디라고 할까 봐 감추고 다녔을까. 스스로가 한심해서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내가 들었던 그 말들은 비난이 아닌 걱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냥 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갓난아이를 육아하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더 자라고, 정말 힘들 정도의 육아를 하고 있다면 손톱을 예쁘게 할 짬이 안 났을 텐데 그 정도의 짬이라도 있으니 진정 다행이라고 한 말이었을 테다.
물론 진짜 비난한 사람도 있으리라. 사실 네일아트는 개인의 취향이다. 깔끔하게 아무것도 안 바른 손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위생상의 문제로 싫어하는 사람도 분명 있다. 그리고 내가 하든 남이 해주든 족히 1시간은 걸리는 이것 말고 다른 곳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취향의 카테고리에서 난 세상의 잣대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제 더 이상 내 손톱이 부끄럽지 않다. 난 네일아트를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것뿐이다. 잠깐의 짬이 생긴다면 기꺼이 그것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는 취향을 가진 것뿐이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손을 감추지 않는다. 당당히 보여주고 예쁜가 물어보고 더 예쁜 색과 디자인을 찾는다. 여전히 샵에는 갈 수 없지만 세상의 기술이 좋아져 붙이기만 해도 되는 예쁜 네일 아트 재료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난 이제 잠깐의 짬으로 인터넷 쇼핑도 한다.
이번엔 곰돌이 모양을 붙여 볼 생각이다.
그리고 아이가 잠이 든 밤이면 나의 네일아트 상자를 꺼낸다. 그리도 손톱을 다듬는 작업이 끝나면 예외 없이 행복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