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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용 Apr 17. 2024

두 글자로 끝나는 레시피

양문형은 생각도 못했던 물건, 김치 냉장고는 또 무슨 일인가?

어딘가 누리끼리한 색감이 보이는 냉장고,

문짝 열리는 소리가 쩍 하고 들리는 냉장고를 열면 다양한 색깔의 통에 다양한 김치들이 들어있었다.

그중 아무거나 꺼내 열면 김치국물이 찰방 하며 징하게 익은 냄새가 코를 찔렀다.

잘 익은 열무김치가 걸리는 날 밥상엔 비빔국수가 한가득,

목구멍 끝까지 밀어 넣는 그 맛은 행복이었다.

레시피는 두 글자다.

툭툭.

고춧가루, 고추장, 빙초산, 설탕, 참기름.

계량이 없었다.

양념통을 툭툭 쳐서 넣으면 새콤하고 매콤하고 달콤한 그 맛이었다.

어떤 날은 매워서 물을 벌컥벌컥, 어떤 날은 너무 시어빠져 뺨 안 쪽이 아리고 침이 고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숫대야만 한 스댕 그릇에 가득했던 국수는 바닥을 드러냈고 그 끝에 오는 배부름은 짧고도 강렬했다.


엄마의 음식 솜씨는 변했다. 나이 들면 간을 잘 못 맞춘다지.

어쩐지 뭐가 빠진 거 같고, 전보다 못한 맛에 아쉬움을 짜증스럽게 말한다.

내가 입맛이 변했다고도 한다. 세상 먹을 게 너무 많아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제는 내가 하고 만다. 깊고 풍부해진 맛의 양념을 툭툭 넣어 잘도 만든다.

새콤 매콤 달콤, 맛도 나쁘지 않다. 아니, 충분히 맛있다. 다만 그때 그 맛이 아닐 뿐이다.


없는 찬에 배불리 먹이려던 마음이 담긴 레시피, 툭툭을 나는 재현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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