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지안 Mar 09. 2023

목표는 3등입니다.

목표는 3등입니다.


아이들을 등원시키고 픽업하는 고정된 일상만 있고, 나를 위한 시간은 계획해두지 않으면 쉽게 매너리즘에 빠지곤 했었다. 올해는 리프레시하는 시간을 고정적으로 보낼 수 있게 정기 강좌를 신청했다.


이번 주 개강을 해서 오랜만에 강의장에 앉아보니, 이렇게 좋은 수업을 준비도 하지 않고 받아만 먹을 수 있는 학생이라 무척 행복해졌다. 선생님께서 가훈에 대한 일화를 하나 이야기해 주신다. 자기 딸이 초등학생일 때 학교에서 가훈을 알아오라는 숙제를 받아 왔는데, 선생님이 고민을 하시다 ‘3등 정도 하자’를 적어주셨다고 한다. 강연장에 있던 청중은 예상 밖의 목표에 박장대소했다. 웃음소리가 아득해질 때쯤, 가훈을 적어주던 아빠의 마음 씀이 어떤 것인지 알 것 같아 마음이 뭉근해졌다. 왕좌가 무거운 1등과, 불행한 2등, 행복한 3등이 있다면 기꺼이 행복한 삶을 택해서 살길 바라는 마음.


둘째 아이가 킥보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헬멧을 주문했다. 아이를 데리고 동네를 다니다 보면 가게 사장님들이 뒤뚱거리며 엄마를 따라오는 앙증맞은 모습 말을 건넨다. 킥보드를 못타 끌고 다니면서도 헬멧만은 꼭 챙겨 쓰는 모습에 기특하다며 다시 말을 건다. 첫째는 자전거를 탈 때, 헬멧과 각종 보호대를 하지 않으면 스스로가 안장에 오르지 않는다. 내리막길을 지나거나 코너를 돌 때는 평소보다 조심한다. 내려서 걷는 날도 많다. 사람이 먼발치에서 다가오면 부딪힐 것을 걱정해 일찌감치 정지하고 기다린다. 유심히 지켜보는 어른들은 아이들의 조심성에 칭찬도 한 마디씩 덧붙여 주신다.


작년 이맘때쯤 첫째 아이가 내리막길에서 킥보드가 전복되며 두개골 골절에 뇌출혈이 생겼다. 피하에 출혈량이 어마어마했고, 담당 교수님도 자기가 최근 몇 년 안에 목격한 소아 환자 중에 가장 심한 경우라고 걱정도 많이 해주셨다. 진료를 보고 나와서도 문득 생각나는 주의사항이 있으면 교수님이 직접 내게 전화를 해서 일러주셨다. 대학 교수의 스케줄을 생각하면 친히 보호자에게 전화를 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친절이며, 그만큼 우리 아이 상황이 심각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고를 겪으면서 부모가 아이에게 바랄 것은 첫째도 둘째도 생(生, 그저 살아있음)이라는 것을 배웠다. 강력한 경험으로 얻은 교훈은 감각으로 남아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 후로 어떤 것에 뛰어나다는 것은 어떤 곳에 아픔이 있다는 말과 같게 들린다. 스스로가 세운 엄격한 규칙을 지키지 않는 찰나의 순간에도, 죽음에 가까운 위기를 떠올리는 것. 그런 강박들이 모여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하니, 내 아이도 그저 3등쯤 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아줌마 취업 도전 실패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