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아픈데 출근을 해야 해?

프리젠티즘

by 데어릿

여느 때와 같이 찾아온 목요일 아침. A는 밀려오는 두통을 참을 수가 없어 억지로 눈을 떴다. 시간은 새벽 5시였고, 출근 준비까지는 아직 두 시간의 여유가 있었다. 머리를 감싸 쥐고 있으니 목도 간질간질했고 기침도 간간히 나는 것이 아무래도 감기인 것 같았다. 평소에도 출근하기 싫었지만 몸상태가 이러니 그 마음은 극에 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출근을 해야 했다. 오늘까지 제출해야 하는 보고서가 있었고 내일까지 준비해야 하는 회의 자료가 있었다. 무엇보다 오늘은 몸이 좋지 않으니 쉬겠다고 했을 때 겉으로는 괜찮다고, 푹 쉬라고 말하지만 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음을 탓하는 팀장님의 눈빛을 마주해야 했다. 그리고 티는 내지 않지만 이렇게 바쁜 날 왜 하필 몸이 아프냐며 내 몫까지 일을 하는 팀원들의 투덜거림도 받아 내야 했다. A는 이 모든 것들을 견딜 자신이 없었다.

출근을 한 A는 당연히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 약도 못 먹고 온 탓에 증상은 점점 더 심해졌고 모니터 속의 모든 것이 눈앞에서 흔들거리며 A에게 더 큰 두통을 안겨줬다. 어떻게든 정신을 붙들고 오늘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팀장님께 제출했고, 내일 있을 회의 자료까지 준비했다. 어떻게 그 일들을 마무리했는지도 모르겠고 당장 내일 팀장님께 대차게 까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일단 이런 몸상태로 일을 마무리한 게 어디냐며 A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A는 자신보다 일찍 퇴근하는 게 못마땅한 듯한 팀장님의 표정을 뒤로하고 비틀거리며 퇴근했다.

그런 한 편 A는 심한 자괴감에 시달렸다. 어쨌든 정시에 출근을 했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모두 마쳤으니 팀원들은 A의 몸상태가 어떤지도 모르는 것 같아 보였다. 그와 동시에 이렇게까지 하면서 출근을 해야 하는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나 하나 오늘 쉰다고 회사가 망하는 것도 아니잖아.'
'내가 아픈 티가 하나도 안 났나?'
'나도 내가 어떻게 일을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게 제대로 됐을 리 없잖아.'
'어차피 내일 까이면 다시 할 텐데 왜 그렇게까지 했지?'
'아 진짜 일하기 싫다. 퇴사하고 싶다.'
'이놈의 회사 내가 로또만 당첨돼봐라. 당장 때려치워 주마.'

몸이 아픈데도 출근을 하는 이러한 행위를 프리젠티즘이라고 한다. 이는 개인적인 사유로 결근을 하게 될 경우 인사고과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고 그 외 심리적으로 겪게 되는 여러 가지 불편함을 피하고자 '출근 안 하고 욕먹을 바에는 일단 출근이라도 하자'라는 심리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현상은 노동자 개인의 건강을 악화시킬 뿐만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생산성은 떨어트리고, 불필요한 비용을 더 발생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출근을 안 하면 돈을 안 주면 되지만 일단 출근을 했으니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것이다. 2004년 10월 하버드대의 연구(Presenteeism : At Work--But Out of It)에 따르면 프리젠티즘으로 인한 손실은 미국에서 연간 150억 달러(한화 약 17조 5,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생산성 측면에서라도 이 경우 회사 차원에서 휴식을 보장해주는 게 적절하다. 이는 노동자의 병가 사용을 보장하는 것을 넘어서서 병가를 눈치 보지 않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업무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특히나 결근과 달리 프리젠티즘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실은 눈에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노동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회사라는 조직사회 특성상 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A도 이런 결론에 다다르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A는 회사를 바꿀 수 없으니 마음을 바꿔먹기로 했다. A의 선택은 회사로부터 다소 미움을 받을 수도 있다. 어차피 회사는 결과만을 바라기 때문에 일개 직원인 A를 챙겨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A는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자신을 챙기고 돌보기로 했다. 단지 그렇게 함으로써 A의 예상에서 벗어난 큰 불이익을 겪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프면 쉬어도 돼.'
'오늘 못했으면 내일 하면 돼.'
'괜찮아지고 나서 더 열심히 하면 돼.'

A는 그렇게 자신의 몸과 마음을 무장하고 다음 날 출근했다. 예상했던 대로 보고서를 다시 써야 했고 회의 준비를 이렇게 밖에 하지 못했냐며 된통 혼이 났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 누구도 A에게 사표를 쓰라고 다그치지 않았고, 팀원들도 일단은 걱정을 해주는 모양이었다. 이 회사가 원하는 것이 끝내 출근해서 일을 해주는 것이라면 그저 그렇게 해주면 된다고 A는 생각했다. 그렇게 하루, 한 주, 한 달씩 버티다 보면 언젠가 정이 드는 날도 오겠지.

A는 자리에 앉아 보고서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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