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날이 오다니
엄마, 왜 *월 *일에서 이야기가 끝났어?
공주가 물었다. 무슨 이야기 말이냐고 되물으니 공주가 대답했다.
"으응, 그거 수첩 빨간 거랑 파란 거를 내가 봤거든? 거기 내 아기 때 이름 있잖아, 열매한테 엄마가 쓴 이야기가 있어서 내가 좀 읽었는데에, 그런데 *일에서 이야기가 끝나고 없는 거야~ 왜 그런 거야?"
배실배실 웃으며 묻는 아이는 질문의 답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일 다음날이 자기 생일이니까. 너가 태어나서 이야기가 끊어졌다는 말에 공주가 다시 물었다.
"더 없어? 엄마, 나 몇 개 읽었는데 너무 재밌었어."
내 심장이 철렁하는 소리를 공주가 들을 수 없는 게 참 다행이었다.
남편이 주거 분리를 하며 시댁에서 가져온 짐에 들어 있던, 오랫동안 잊고 지낸 내 수첩 두 권. 태교 일기랍시고 거의 매일 썼었는데 덤핑 받아 짐 정리하며 9년 만에 펼쳤더니 남편에 대한 서운함을 토로하는 글이 여럿이던, 슬픔으로 얼룩져 있어 깜짝 놀랐던 일기. 수신자만 공주인 그 넋두리 일기를 공주 본인이 읽었단다.
저녁 챙기느라 바쁘다가 엄마 속 시끄러워진 것도 모른 채 그저 더 읽고 싶다며 웃는 공주 얼굴을 보노라니 조용히 목이 메었다. 이럴 때는 공주가 행간에 고인 엄마 눈물을 볼 줄 모르는 어린이라는 사실이 참 다행이었달까.
이혼을 결심하고 실행하며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고 친구에게 말했을 때 친구가 그런 말을 했었다. 지금은 그냥 멋모르고 이혼을 겪은 아이들도 크면 엄마의 결정을 이해해 줄 거라고. 위로가 되었다. 아무에게도 이해받지 못해도 상관없다는 마음으로 내린 결단이었지만, 아이들이 이해해 준다면 미안함이 줄어들 것 같았다.
공주와 왕자는 언제쯤이면 엄마가 브런치에 사는 집요정이고 발칙한 이혼 일지를 쓴 요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까. 언제쯤이면 엄마가 쓴, 모르고 지나치려야 지나칠 수 없는 슬픔이 가득한 내 이혼 일지를 읽게 될까.
어른이 되어 엄마의 이혼 일지를 읽은 아이들이 슬퍼하지 않으면 좋겠다. 아빠를 미워하지도 않으면 좋겠다. 지금처럼 철판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다는 시답잖은 얘기를 그때도 시시콜콜 아빠랑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