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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un 12. 2023

호랑이 고기가 남긴 안쓰러움

채식을 하려다가 이게 웬 봉변

일주일에 하루는 채식을 한다. 채식은 결혼 전 외국 생활 할 때 피부로 접했는데, 나는 약간의 생태 감수성을 보태어 고기를 좀 덜 먹어 보자는 식으로만 가볍게 실천 중이다. 


어려서 엄마가 이따금 해 주시던 콩고기 반찬에 대한 기억이 너무 좋은 것도 한몫했다. 간장 양념을 한 엄마표 콩고기는 정말 쫄깃하고 맛있었으니까. 얼마 전 오랜만에 엄마표 콩고기를 먹고는 그 맛이 너무 반가워 나도 처음으로 콩고기를 주문했다.


네이버 리뷰가 아주 많은 스토어에서 이것저것 골고루 시켰는데, 떨리는 마음으로 평가가 좋던 동그랑땡을 맨 먼저 해 줬더니 웬만하면 안 가리고 잘 먹는 공주랑은 달리 지 애미 닮아 입맛이 안 무난한 왕자도 아주 잘 먹었다.


오늘은 미리 해동해 둔 콩불고기를 퇴근하자마자 볶아서 양배추찜과 쌈장, 물김치로 저녁을 차렸는데, 뭐 먹을 때면 시키지도 않은 재료 맞추기를 종종 하는 일곱 살 왕자가 어김없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게 무슨 고기인지 궁금해했다.


"소고기는 아니고. 엄마, 이게 무슨 고기예요?"


맞춰 보라고 했더니 도깨비 닮은 눈을 아까보다 더 동그랗게 뜨면서 조금도 지체 없이 물었다.


호랑이 고기?!

갑자기 소환된 호랑이 (이미지 출처=Freepik)

 

아무리 모르는 맛이어도 그렇지, 채식 식탁에다 난데없는 호랑이 소환이라니. 알다가도 모를 그 동심을 차마 파괴할 수 없어 나도 왕자처럼 눈을 크게 뜨고 어떻게 알았냐고 되물었다. 왕자가 아주 흐뭇하게 웃었다. 


이 귀여운 웃음을 애들 아빠도 봤더라면 참 좋아했을 텐데, 아이도 두 배로 예쁨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 아이들이 가끔 너무 치명적으로 사랑스러우면 이런 모습을 많이 놓쳐 버린 그의 삶이 안쓰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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