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접교섭일은 애들 할머니의 반찬을 싣고
전날 친구들과 3차까지 마치고 언니네 갔다가 모스카토 한 병과 케이크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운동 조금 한 후 들기름 두른 팬에 돼지목살 숭덩숭덩 썰어 넣고, 잘 익은 김치 툴툴 털어 다져 넣고 달달 볶은 뒤 쿠팡에서 산 콩비지도 넣었다. 참치액젓과 새우육젓으로 적당히 간을 하니 역시나 아주 상냥한 맛의 콩비지찌개가 완성되었다.
곧이어 누룽지 냄새가 부엌 가득 퍼졌다. 개봉한 지 얼마 안 된 수향미로 지은 밥도 완성. 이제 애들 아빠가 애들만 데리고 오면 된다며, 내내 분주하던 마음을 살짝 쉬게 했다.
아이들은 얘기했던 여섯 시를 약간 넘겨 도착했다. 뒤따라 들어온 애들 아빠가 다녀왔어요~ 그랬다. 그리고는 커다란 종이가방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머니가 김치랑 좀 싸 주셨어요.”
아이코. 막 콩비지찌개에 마지막 김치를 넣은 참이었다. 엊그제 할머니 김치 찾는 공주에게 그거 이제 없다며 백김치를 줬었는데 공주가 이번에 할머니 만나면서 할머니 김치 다 먹었다고 말했나 보다. 아이들은 전에도 할머니의 김치를 참 좋아했었다. 할머니 김치가 제일 맛있어, 따봉! 하면 어머님은 애기처럼 좋아하시곤 했다.
어제 친구들 만나서도 얘기했지만 아이들이 있는 상황에서 이혼이란 참 상상 이상으로 복잡다단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어른들 모두 한마음으로 아이들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 그래서 어머님도 나 판결받으러 가던 날 그렇게 말씀하셨을 테지.
“애들 아빠가 밉고 그래도, 애들 있는 데서는 흉보거나 하지 말고. 전에 테레비 보니까 그런 게 애들한테 안 좋대드라.“
애들 아빠가 떠난 뒤 나는 반가운지 안 반가운지 잘 모르겠는 그 김치를 정리하려고 현관으로 갔다. 김치만 있을 줄 알았던 종이가방 안에는 여름이면 어머님이 으레 챙겨 주시던 채소가 가득이었다. 아들이 잘 먹어서 자주 주시는 줄 알았던 오이김치도 들어 있었다.
‘이걸 언제 다 먹나, 이제 우리집엔 진공청소기처럼 잘 먹는 당신 아들도 없는데.’
어머님은 참 여전하시다. 오이고추는 다행히 애들도 좀 먹으니까, 토마토는 주스 갈아먹고, 가지는 소고기 다짐육 사서 가지밥 해 먹어야겠다. 상추는 모르겠다. 누가 매일 50장씩 먹으면 어떻다고 하던데 돼지런히 잘 먹어 보아야지. 그냥 다른 이유는 없고, 음식물쓰레기 나오는 게 싫어서 그런다.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