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 내어놔도 부끄러운 나란 바가지
상냥하기 그지없던 트레이너쌤이 랫풀다운이라는 기구 사용법을 알려 줬다. 바 어디쯤을 잡고 어떻게 내리면 된다고 자세를 교정해 주셨다.
"허리 펴시구요~ 가슴 내미시구요~"
그래서 시키는 대로 허리도 펴고 가슴도 내밀었는데 선생님이 또
"가슴 내미시구요~ 쭉이요~"
하길래 나도 모르게 선생님을 올려다보며 이상한 소리를 하고 말았다.
이게 다예요.......
그 선생님과의 수업은 그날이 마지막이었다.
여느 때처럼 적당히 맥아리 없이 헬스장으로 들어갔더니 안내데스크에 앉아 있던 어떤 쌤이 일어나서 인사를 했다. 나도 목례를 했다. 친구들이 헬스장 가서 아무나 보고 웃고 떠들지 말래서 잘 지키는 중이었다.
환복하고 물 마시려는데 아까 그 선생님이 무슨 파일을 들고 오며 뭐라고 입술을 움직이는 게 보여서 귀에 있던 이어폰 알맹이를 빼고 네? 했더니 설문조사 중이라며 뭐 불편한 거 없냔다.
가만히 생각해 보다가 없다고 했다. 작은 거라도 괜찮으니 말해 달라기에 다시 생각해 보다가 없다고 답했고, 이름을 묻길래 김, 도토리 도, 비둘기 비, 하고 말했더니 갑자기 웃으셨다. 나는 따라 웃지 않고 멀쩡한 사람인 척을 했다. 그런데 선생님이 왜 피티 받다 안 받으시냐고 묻는 바람에 내가 도른도른 하다는 사실이 들통나고 말았다.
"아, 저번에 PT 몇 번 받았는데 뭔가 좀... 음... 약간... 가학적이더라구요."
대답을 하면서도 이게 헬스장에서 쓰는 말은 아닐 것 같아 멋쩍어서 웃어 버렸는데 선생님은 진작부터 웃고 있었다.
"제가 전신 유산소는 몇 가지 꾸준히 했었는데 웨이트는 처음이었거든요. 근데 너무 느낌이 달라서, 이게 한 군데만 죽자고 괴롭히니까......."
"아, 그걸 이제 고립이라고 해요."
"네네, 고립인데 근데 그게 저한테는 좀 불편해서요."
곤란한 마음으로 주절주절 했더니 선생님이 그러시구나, 했고 나는 눈썹과 고갯짓에 진심을 담아 남은 주접을 떨었다.
"제가 지금은 그런 힘든 거는 안 하고 살고 싶어서......"
서로 이 악물고 웃음 꾹 참는 와중에 진정성을 보태어 대답을 마무리했다. 새로운 걸 해 볼까 싶어 운동을 시작했는데, 막상 해 보니 지금이 낯선 거에 집중하기 좋은 시기는 아닌 것 같아서, 이거 좀 지나가면 다시 말씀 드려도 될까 하고.
주책바가지가 살짝 고장이 나면 멀쩡한 척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결국 어느 날은 운동하다 타월만 챙겨 들고 비상구로 뛰쳐나가는 일도 생기더라. 집에서 새는 바가지는 헬스장에서도 새기 마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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