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날이 있었다. 그리고 이건 실패담이 아니다.
애정하는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을 살피다가 눈길을 끄는 제목을 발견했다. <힘을 낼 수 없는데 힘을 내라니>. 잘 살려고 애쓸수록 우울한 세상에서 사는 법이라는 소개글에 마음이 갔고, 때때로 초대한 적 없는 우울감의 방문이 달갑지 않은 나에게 위로를 줄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다.
재생 버튼을 누른 뒤 트레드밀 위를 씩씩하게 달리며 저자가 걸어온 우울의 여정에 동참할 때만 해도 나는 그 책의 말들이 일종의 트리거가 될 거라는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했다. 저자의 우울은 내가 겪은 것과는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심했고, 나는 시도하지 못한 일을 여럿 시행했던 저자의 마음과 행동에 대한 묘사가 아주 생생했다.
트레드밀 뛰는 것보다 책을 듣는 게 더 버겁다고 느껴졌던 그때 바로 정지 버튼을 눌렀더라면,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로 바꿔 틀었더라면 아마 울면서 헬스장을 뛰쳐나가는 일 따윈 없었을 텐데 나는 그러지 않았고, 이런저런 위험한 일들을 벌였던 저자의 슬픔을 바보같이 찬찬히 잘 따라갔다.
사건은 저자가 우연히 고 최진영 씨의 노래를 들으며 슬펐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일어났다. 어쩌면 성우가 책을 너무 잘 읽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어쩌면 혹시 누군가 또 나처럼 울까 봐 옮길 수 없는 그 노래 가사가 슬펐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나는 가빠지는 숨을 참을 수 없어 황급히 이어폰을 빼며 머신에서 내려왔다.
작년 이맘때쯤,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기 전의 슬픔들이 예고도 없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쳤다. 머신 옆에 걸터앉아 수건으로 얼굴을 덮고 숨을 고르려 했지만 한 번 시작된 흐느낌을 좀처럼 멈출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버티려고 했다. 잠시 심호흡을 하면 금방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런데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급기야는 참으려 애쓰느라 숨쉬기가 더 힘들어졌다. 금방이라도 뭔가가 크게 터질 것만 같았다.
앉아있던 자리에 이어폰을 두고는 도망치는 사람처럼 곧장 비상구로 뛰쳐나갔다. 계단에 걸터앉고서야 비로소 눈물이 쏟아지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다. 따라 나온 트레이너쌤이 수건에 얼굴 파묻고 끄윽끄윽 우는 어디 하나 괜찮은 곳 없는 나에게 괜찮으시냐고 물었고, 나는 수건에서 얼굴을 떼지 못하고 그저 죄송하다고 말했다.
얼마나 거기 앉아 있었는지 모르겠다. 핸드폰도 안 챙기고 그냥 뛰쳐나온 줄을 그제서야 알았다. 수건은 제법 많이 젖어 있었고, 다시 들어가려니 트레이너쌤 보기가 부끄러운 그 현실을 직시하느라 약간의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래도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었고, 아무도 없는 집으로 돌아와 씻고 밥을 먹으려는데 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얼른 차키를 챙겨 네모빵 카페로 갔다.
주문대에 서서 뭐 먹을까 하는 나를 발견한 친구가 대뜸 물었다.
"울었어?"
"부었어?"
"응."
"거울을 못 봤네. 운 게 아니라 처울었어."
짧게 숨을 내쉰 친구의 얼굴에 다 이해한다는 말이 써 있었다.
"뭐 마실래?"
"뭐 마실까?"
늘 커피를 마셨는데 그날은 많이 울고 간 특별한 날이니 음료도 특별하게 친구의 추천을 받아 히비스커스 애플에이드로 시켰다. 창가에 앉아 당 충전을 하고 멍을 때리고 산책을 하고, 그렇게 한참을 있다 보니 마감 시간이 가까워져 손님들로 북적이던 카페에 남은 손님이라고는 어느새 나뿐이었다. 조금 여유가 생긴 친구에게 다가갔다.
"왜 울었어?"
우울증 환자가 우울 극복한다는 오디오북 듣다가 너무 슬퍼서 헬스장에서 뛰쳐나왔는데 울음이 안 멈췄다고 말했다.
"글을 쓰지."
"너무 슬퍼서 쓸 수가 없어."
애들이 집에 올 시간이라 가방 챙겨 "갈게." 하고 인사하며 팔을 벌리니 친구가 와서 안아 줬고, 그 한 번의 포옹에 눈물이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이것 때문에 여기에 왔나 봐. 나 이게 필요해서."
듬직하지도 않은 친구 어깨에 기대어 울고 있으려니 친구가 내 등을 토닥이다 말했다.
"등짝이 말랐구마잉."
"아니야, 그렇지 않아, 내일모레 60키로야."
"60키로면 마를 수 없나?"
"내가 180은 아니니까."
울면서도 허튼소리를 하니 친구도 내가 이제 좀 괜찮은가 보다 싶었던 것 같다.
"축축하구마잉."
그 말에 놀라 한참만에 고개를 들었고, 친구 입은 흰 남방은 어깨가 시스루가 되어 있었다. 미안하다 하고선 내가 남의 직장에 와서 이렇게 진상을 부린다고, JS도 이런 JS가 없다고 했더니 친구는 뜬금없이 저기 나비가 날아다니는구나, 아까는 참새가 저쪽으로 계속 날아다녔는데, 하더니 갑자기 "나비, 참새, 그리고 JS"라는 말로 그날 하루를 요약했다. 덕분에 웃으며 눈물을 잘 그쳤다.
삼 분 남짓한 포옹에 세 시간 넘는 기다림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던 한 달 전 그날을 이제서야 돌아본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는다고 했던가. 눈물을 잔뜩 쏟고 나면 마음이 어떤 때는 더 단단해지는 듯도 하고 어떤 때는 조금 메마르는 듯도 하다.
'대체로 잘 지낸다'고 할 때 그 '대체로'에 해당 안 되는 날에는 이런 일도 일어난다. 주로 PMS가 찾아오는, 호르몬의 노비가 될 때 일어나는 일이다. 도대체 폐경은 언제 오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