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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un 28. 2023

딸애의 소원을 수리합니다

내 소원은 수리해 주는 사람이 없지만


엄마, 더 일찍 일어날 수 없어? 아침 같이 먹어 주면 좋겠어.

공주가 지난주에도 몇 번 그러더니 그저께 또 그렇게 말했다. 기분안정제라는 것 때문일까. 약은 하루에 한 번, 자기 전에 먹는 게 전부이고, 늦어도 열 시쯤에는 먹으래서 그렇게 하는 중인데 약 추가된 후 일주일 내내 아침 네다섯 시면 눈이 떠지고, 의식이 들면 속이 제법 메스꺼워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입덧, 토덧에 비하면 아주 귀여운 수준.


게다가 그렇게 정신을 차리면 ‘아, 다시 잠이 들 순 없겠구나' 라는 느낌이 너무 뚜렷해서, 그런데 여전히 너무 피곤해서, 크로와상 생지를 식탁에 꺼내 둔 뒤 잠시 바람을 쐬거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몸을 누인다. 그러면 곧 공주가 일어날 시간이 되고,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지만 통 몸이 일으켜지지는 않는 상황이 되풀이된다.


공주는 엄마가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엄마 혼자 아이들을 돌본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여섯 시쯤 일어나 아침을 하고 도시락을 서너 개씩 싸던 그 시절처럼 요즘도 전날밤 미리 익혀둔 채소로 수프를 만든다거나 계란마요 토스트를 구워 줬으면 한다. 지금은 주말에도 그러기가 기껍지 않은데 말이다.


그 시절의 도시락


엄마 마음에 굳은살이 생기지 않아 아직 약을 먹는 중이고, 그래서 지금은 예전의 방식으로 아침을 맞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고도 싶지만 공주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서 고민했다. 한부모 가족의 아이로 만드는 게 모자라 약 먹는 엄마의 딸로 만드는 것 같아서 그게 또 미안하니까.


이번 주에는 다행히도 메스꺼움이 많이 줄어서 어제는 미리 가래떡과 치즈를 꺼내놓고 잠시 새벽 산책을 하고, 다녀와서 애들 깨워 에프에 구운 가래떡에다 치즈와 연유를 뿌려 줬다. 나는 박카스랑 비슷해 보이던 생생톤이라는 걸 마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맛있다며 잘 먹는 공주에게 설명했다.


“공주, 엄마가 요즘 자기 전에 약을 먹는데 그걸 먹으면 아침에 좀 많이 졸려서 일어나는 게 힘들어. 외국 살 때도 너네끼리 아침에 바나나 먹고 시리얼 꺼내 먹을 때가 있었잖아, 토스트도 해 먹고. 그치? 그러니까 엄마가 못 일어나면 짜증 내지 말고 좋게 깨우거나 간단하게 뭐 챙겨 먹으면 안 될까? 충분히 할 수 있어. 알겠지?”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요구를 거절할 때면, 그만 좀 하라는 표정으로 짜증을 내고 나면, 꼭 시간을 함께 보내자는 내게 거절로 일관했던 그 시절의 남편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안 좋다. 남편이 내게 했던 잘못을 아이들에게 답습하는 엄마가 되는 것 같아서. 그러니 나는 힘을 내야 한다. 나중에 말고 지금, 딸아이의 사소한 여러 소원을 잘 들어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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