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소원은 수리해 주는 사람이 없지만
엄마, 더 일찍 일어날 수 없어? 아침 같이 먹어 주면 좋겠어.
공주가 지난주에도 몇 번 그러더니 그저께 또 그렇게 말했다. 기분안정제라는 것 때문일까. 약은 하루에 한 번, 자기 전에 먹는 게 전부이고, 늦어도 열 시쯤에는 먹으래서 그렇게 하는 중인데 약 추가된 후 일주일 내내 아침 네다섯 시면 눈이 떠지고, 의식이 들면 속이 제법 메스꺼워 가만히 있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입덧, 토덧에 비하면 아주 귀여운 수준.
게다가 그렇게 정신을 차리면 ‘아, 다시 잠이 들 순 없겠구나' 라는 느낌이 너무 뚜렷해서, 그런데 여전히 너무 피곤해서, 크로와상 생지를 식탁에 꺼내 둔 뒤 잠시 바람을 쐬거나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고 다시 몸을 누인다. 그러면 곧 공주가 일어날 시간이 되고, 엄마를 부르는 목소리는 들리지만 통 몸이 일으켜지지는 않는 상황이 되풀이된다.
공주는 엄마가 일하는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엄마 혼자 아이들을 돌본다는 사실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것 같다. 여섯 시쯤 일어나 아침을 하고 도시락을 서너 개씩 싸던 그 시절처럼 요즘도 전날밤 미리 익혀둔 채소로 수프를 만든다거나 계란마요 토스트를 구워 줬으면 한다. 지금은 주말에도 그러기가 기껍지 않은데 말이다.
엄마 마음에 굳은살이 생기지 않아 아직 약을 먹는 중이고, 그래서 지금은 예전의 방식으로 아침을 맞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리고도 싶지만 공주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어서 고민했다. 한부모 가족의 아이로 만드는 게 모자라 약 먹는 엄마의 딸로 만드는 것 같아서 그게 또 미안하니까.
이번 주에는 다행히도 메스꺼움이 많이 줄어서 어제는 미리 가래떡과 치즈를 꺼내놓고 잠시 새벽 산책을 하고, 다녀와서 애들 깨워 에프에 구운 가래떡에다 치즈와 연유를 뿌려 줬다. 나는 박카스랑 비슷해 보이던 생생톤이라는 걸 마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맛있다며 잘 먹는 공주에게 설명했다.
“공주, 엄마가 요즘 자기 전에 약을 먹는데 그걸 먹으면 아침에 좀 많이 졸려서 일어나는 게 힘들어. 외국 살 때도 너네끼리 아침에 바나나 먹고 시리얼 꺼내 먹을 때가 있었잖아, 토스트도 해 먹고. 그치? 그러니까 엄마가 못 일어나면 짜증 내지 말고 좋게 깨우거나 간단하게 뭐 챙겨 먹으면 안 될까? 충분히 할 수 있어. 알겠지?”
피곤하다는 이유로 아이들의 요구를 거절할 때면, 그만 좀 하라는 표정으로 짜증을 내고 나면, 꼭 시간을 함께 보내자는 내게 거절로 일관했던 그 시절의 남편이 된 것 같아서 마음이 너무 안 좋다. 남편이 내게 했던 잘못을 아이들에게 답습하는 엄마가 되는 것 같아서. 그러니 나는 힘을 내야 한다. 나중에 말고 지금, 딸아이의 사소한 여러 소원을 잘 들어주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