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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도비 Jun 18. 2023

힘든 게 자랑은 아니지만

실패든 성장이든 삶 그 자체로 아릅답게

공공장소에서 눈물이 나는 게 썩 정상은 아니잖아요, 그쵸, 선생님?

헬스장에서 있었던 일, 그리고 PMS와 약 다 먹은 시기가 겹치면 기분이 많이 다운되는 점, 아이들이 아빠집에 가는 주말이면 집에 혼자 있기가 힘들어 격주로 언니네 가서 자는 사실을 선생님께 말하자 선생님이 끄덕끄덕 하시더니 취미를 좀 가져보는 게 어떨까 하고 물으셨다.


“취미, 뭐 하는 거 있어요.”

“어떤 거죠?”

“생리할 때 아니면 그래도 한 주에 두 차례 정도 헬스장에 가고요, 그리고 글 쓰는 게 취미라서 블로그 같은 거에 글도 써요. 일기처럼. 요즘은 좀 자주 쓰고요.“


그러자 선생님이 뜻밖의 칭찬을 해 주셨다.


“운동도 하시고, 정적인 것도 하나 하시고, 골고루 잘 하고 계시네요.”


종종 내가 약을 약하게 먹는다고, 더 필요한 것 같으면 말하라고 하시던 선생님. 내가 생일이 다가와서인지 잘 지내다가도 삶을 돌아보면서 문득 마음이 힘들어진다고 얘기하니 기분 안정제라는 걸 처방해 주겠다고 했다. 세상에 별 약이 다 있다.


약 꾸준히 챙겨 먹고, 다 먹으면 두 시기가 겹치지 않게 재깍 다시 오라고 당부하시길래 감사합니다 인사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선생님께 물었다.


“이혼하면 원래 이렇게 힘든가요? 제가 유난히 더 그런가요?”

“이혼했는데 안 힘든 게 드문 일이죠. 아무렇지도 않을 순 없죠.”


그 말이 뭐라고 제법 안심이 되었다. 그림자처럼 늘 삶을 따라다니는 고단함에 현타가 와서 무력해질 때도 원래 그런 거라고, 나는 지금 할 수 있는 노력을 다 찾아서 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게 되었고.




소화 기능이 떨어지면 약을 먹듯, 나는 지금 감정 조절 기능이 떨어졌으니 약의 도움을 받을 뿐이다. 나를 지키고, 아이들을 지키고, 우리의 소중한 삶이 행복에 가까워지기를 바라니까, 나는 슬픔을 더 잘 소화하기 위해 약을 먹는다.


두더지 잡기 하듯 꾹꾹 눌러둔 헬스장의 기억을 한 달도 더 지나 써낸 이유도 이 점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약을 먹는 사람이어도 괜찮게 살 수 있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살기로 했다. (그리고 친구들 말이 나는 원래도 똘끼가 있었다고 했다.)


묻는 이 하나 없는 나 힘든 이야기를 굳이 남들도 볼 수 있는 곳에 쓰는 까닭은 내 슬픔과 고단함이 내 나라 근대사처럼 덮어서 가릴 만한 대단한 비극이 아니기도 하거니와, 힘든 날도 있지만 그래도 이것은 황현상 선생이 말했듯 실패담이 아니라 성장통이라고, 나는 조금 더 힘내어 살 거라고 다짐하기 위해서다.


설령 이 글이 실패담으로 남게 된다 한들 이제 나는 그조차 긍정할 수 있다. 어김없이 밝아오고 흘러가는 매 하루를 늘 새롭게 열심히 살았다는 기록이자 증거로써 이 글은 충분히 의미 있을 테니.  


약 위에 앉은 사람들이 죄 슬픈 표정 뿐인 게 마음에 들지 않아 제목에 넣을 땐 어플로 미소 짓도록 수정했다. 약을 먹지만 웃으며 잘 살 수 있어요. <이미지 출처=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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