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여도 알 수 없는 내 엄마의 마음
뭐 반가운 소식이 있다고 엄마와 안부 전화를 자주 할까. 남매들끼리는 종종 통화해도 엄마랑 용건 없이 전화하는 일은 현저히 줄었는데, 문신처럼 잘 입던 바지가 한동안 안 보이길래 친정에 두고 왔는지 물으려고 전화했다가 간만에 사는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지출이 늘게 된 것과 수입도 늘었다는 소식을 나란히 전하고 있으려니 종양을 이미 도려냈다는 좋은 소식과, 그게 전이 위험이 있어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나쁜 소식을 전해 주던 2년 전 그 의사가 된 것 같았다.
그러다 따로 양육비 받는 것은 없고, 애들 아빠가 매달 지급해야 할 금액에서 피아노 학원비랑 공과금 정도를 제한 금액을 보증금에서 까내려 가고 있다 말했더니 아이코 어쩌냐 하는 걱정 섞인 한숨 소리가 전화기를 통해 또렷이 들렸다.
큰돈 들어갈 일 생기면 대출을 받든지 이렇게 저렇게 하면 안 될까 싶어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그래도 살아 있잖아, 살아 있으니까 마이너스 통장도 만드는 거야~
그 말에 엄마가 작게 웃으시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그래, 그렇게도 살 수 있는 거지, 그랬다. 목소리가 아까 아이코, 어쩌냐 할 때보다는 한결 가볍고 밝아 다행이었다. 엄마는 힘내서 잘 살아보라고 나를 응원했다.
어떻게 끝내야 할지 모르겠던 전화를 왕자가 달란트 지갑이 안 보인다고 옆에 와서 자꾸 짜증낸 덕분에 잘 끊었다. 지갑을 찾고는 미안한 얼굴로 엄마, 죄송해요, 사과하는 왕자를 방으로 들여보낸 뒤 소파에 누워 한숨 돌리려니 공주 생일 축하 차 친정에 갔을 때가 다시 생각났다.
엄마랑 식탁에 둘러앉아 다음 CT 언제 찍는지 얘기하고 있었다. 그래도 내 암이 많이 위험하지 않아서, 잘 보이는 부위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하시길래, 그런데 말로는 다행이라고 하면서도 붉어진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길래 엄마를 위로하고 싶었다.
"엄마, 그냥 티눈 같은 거야, 번거롭고 아파도 잘만 제거하면 괜찮은 거. 나는 그렇게 생각해. 그러면 기분이 좀 낫더라고."
그러자 엄마가 말했다.
"그래도 딸이 암이라는데, 엄마 마음은 말로 다 못 하는 거야. 외국 나가 있어 도와 주지도 못하고,"
말을 다 맺지 못하고 연신 눈물만 훔치던 엄마 마음을 나는 다 이해할 수 없었다. 육아를 10년째 하고 있지만 엄마가 되었어도 내 늙은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슬펐을지 나는 잘 모르겠다. 엄마는 나랑 통화한 뒤 또 눈물 흘리셨을까. 괜한 걱정을 하다 그래도 살아 있기에 엄마도 나도 눈물 흘릴 수 있다고 나를 다독였다.
지난주에 들은 정신과 의사 나종호 선생님의 책에서, 생을 마감하려 했던 이들의 상당수가 살게 된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고 했는데 나도 그렇다. 살기로 했으니, 힘들어도 낼 수 있는 만큼의 기운을 잘 내면서 끝까지 잘 살아갈 것이다. 엄마 마음을 다 이해하는 슬픈 날 같은 건 영원히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