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몇 편 쓰고 혼란에 빠졌다. 누굴 향해 쓰고 있는지 모호했다. 남들도 다 아는 얘기를,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문체로, 왜 쓰고 있는가? 모두를 유혹하는 재미난 글을 쓰고 싶지만 그럴 자신은 없으니 자존감만 푹푹 꺼져간다. 길을 잃고 멈춰 섰다.
그럴 때 도망가서 숨는 곳이 <팬텀 싱어>다. 방에 틀어박혀 <팬텀 싱어> 영상을 본다. 시즌 1, 2, 3의 올스타전은 말 그대로 별천지다. 여기서 트윙클 저기서 트윙클, 각기 제 자리에서 반짝거리니 별천지 한가운데에 들어앉은 느낌이다. 숨을 곳을 찾다가 들어온 곳이 하필 별들이 파티 중인 클럽인 거다. 숨어서 숨을 고르기에 이보다 적당한 곳이 또 있을까. 도망자임을 잠시 잊고 축제 속으로 밀려 들어간다. 노랫말은 어찌 그리 위로가 되는지, 노래하는 친구들은 어찌 이리 아름다운지, 컴퓨터 화면 속에선 별이 빛나고, 컴퓨터 밖에선 흔들리는 자아가 눈물을 닦아가며 춤을 춘다. 이럴 땐 김 혼비 작가처럼 술로도 위로받고 싶은데, 따라 놓은 샴페인은 이미 기포 다 빠진 채 미지근하다.
그중에는 맘이 더 가는 별이 있다. 시리우스처럼 가장 밝은 별은 아니다. 머뭇머뭇하다가 말할 때를 놓치고, 용기 내서 한마디 했는데 분위기 훅 깨버리는 캐릭터. 노래할 때마다 긴장감으로 몸이 굳어버리는지 선 모습도 앉은 모습도 어색한 친구, 이 친구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다. 이름은 김민석, 테너다. 조심조심 올라가는 고음이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바이젠>을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 같다. 한국 전통 관악기 중에서 가장 높고 청량한 음색이 나는 소금 소리 같기도 하다. 콰르텟에 한 명 있는 테너인데도 중심 테마를 노래하기보다는 살짝 얹어주는 파트로서 역할할 때가 많다. 늘 가장자리에 서고 카메라 렌즈에 잘 안 잡히는데 그런 그를 집요하게 쫒는다. 왜냐고?
나 같으니까.
'나'가 깨어나는 순간 축제는 끝난다. 도망을 멈추고 백지 화면을 켠다. 언제쯤 백지 화면을 마주 하는 일이 즐겁고 자신이 생겨줄지는 모르겠다. 자신감이 생기는 날까지 버티며 써보겠다는 생각도 아니다. 좋은 글, 잘 쓴 글을 쓰는 사람은 많아도 내 글을 쓰는 사람은 나뿐이니, 그저 내 글이나 만들어보자는 심정으로 써 내려간다. "너 인삼 아니야. 너 고구마야" 인삼 밭에서 자기가 인삼인 줄 알고 살다가 순간 당황한 고구마. 그러나 곧 가사를 바꿔서 또 노랠 부른다. "난 고구마다 랄랄~~ 난 고구마다 랄랄~~" 인삼밭의 고구마면 뭐 어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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