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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니 최 Feb 23. 2021

구두

올해 스물여덟인 A, B, C는 친구다. B는 직장인이며 C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A는 소위 말하는 취준생이다. 열아홉 무렵의 A의 꿈은 작가였는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최연소로 등단을 하는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A가 작가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A는 학창시절 내내 백일장과 공모전을 종횡무진 하며 심심찮게 수상을 했기 때문이다. B는 A에게 “너 유명해지면 싸인해줘야 한다.” 했고 A는 “그래.” 하며 웃었다.


승무원이 꿈이었던 B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승무원 학원에 다녔다. 승무원 학원에 등록한 B는 고강도의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A는 키 168cm에 55kg인 B가 ‘뚱뚱하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B는 승무원이 되려면 5kg는 더 빼야 한다고 했다. B는 23살이 될 때부터 나이가 많다며 초조해했다. 기업마다 다르지만 보통 25살을 입사 마지노선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B가 첫 면접을 가던 날, B는 새벽부터 일어나 헤어와 메이크업을 정리하고 이틀 전부터 물도 마시지 않았다. 이후로도 같은 일은 계속 됐다. 


C는 A와 B 중 가장 공부를 잘했다. A와 B 뿐 아니라 반에서도 손에 꼽히도록 공부를 잘했다. 중학교 때부터 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고 남들은 하나 붙기도 힘든 대학을 3개나 붙었다. 상위권 대학에 진학한 C는 부모님의 기쁨이었다. C의 아버지는 대학 졸업을 앞둔 C에게 공무원 시험을 보는 게 어떻겠냐 물었다. C의 아버지는 안정적인 직장에 들어가 일하는 게 결혼 후에 아이 키우기도 좋을 것이라 설명했다. C의 아버지는 당시 퇴직을 앞두고 있었다. C는 A와 B에게 “그래도 안정적인 게 나쁜 건 아니니까.” 라고 말하며 공무원 시험 공부를 시작했다. 


가장 먼저 실패를 경험한 사람은 A였다. 고등학교 3학년 내내 단상 위에 올라가 상 받기 바쁘던 A는 끝도 없는 낙방을 겪어야 했다. 한 해, 두 해, 그리고 다섯 번째 해까지. A는 어떤 곳에서도 등단하지 못했고 수상도 하지 못했다. A가 책상 앞에 앉아 오래된 소설을 고치고 공모전 일정을 달력에 적어놓고 남은 돈을 세는 동안 다른 아이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 준비를 시작했다. A는 스물여덟이 된 뒤에야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것을 깨달았다. A가 구직 사이트를 뒤지며 소설 대신 자소서를 작성하는 동안 B는 여전히 샐러드를 먹고 밤마다 헬스장에 가 2시간 동안 달리기를 했다. A와 B는 가끔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A의 자기소개서를 읽은 B는 “너는 글 잘 쓰니 금방 될 것이다.” 라고 했고 B는 A에게 “너는 이미 승무원 같다.”고 했지만 A는 그 뒤로도 한참을 취직하지 못했고 B는 승무원이 되지 못한 채 28살이 되었다. 그리고 C는 세 번째 공무원 시험에서 떨어졌다. 


가장 먼저 포기한 것은 B였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강타한 2020년, 직격타를 맞은 항공업계는 신입 채용을 포기했고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봄에도 B는 샐러드를 먹고 헬스장에 갔다. 하지만 면접장에서 어떤 질문도 받지 못하고 돌아오던 날, B는 승무원 준비를 포기했다. B는 “반년만 지나면 29살이다.” 라고 설명했고 A는 전처럼 “우린 아직 어리다.”고 해주지 못했다. B는 두 달 만에 비서로 취업했다. 면접장에서 대학 졸업 후 줄곧 놀았다고 대답했다는 B에게 A는 승무원 시험을 봤다고 말하면 되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렇게 말하면 실패한 사람으로만 보일 것 같아. B는 웃기지 않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웃었다. 그리고 C는 다시 시험에 낙방했다. 


열아홉 무렵의 A는 스무 살에는 대단한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스무 살의 A는 스물여덟이 되면 대단한 사람은 아니라도 많은 것을 당연하게 하는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직장을 다니고, 운전을 척척 하고, 내 소유의 자동차를 가지고, 엄마 아빠에게 용돈으로 백만 원을 건네주는 그런 삶. 스물여덟의 A는 운전면허가 있지만 운전 하는 법을 모르고, A 명의의 통장에는 몇 백만 원도 없다. 아직도 엄마랑 싸우고 동생이랑 다투다 운다. 


B가 취직한 후 A와 영화를 봤다. A와 B는 그날 영화 ‘리틀포레스트’를 봤다. 영화의 주인공인 배우 김태리는 임용고시에서 번번이 낙방하고 애인과도 다투어 헤어지게 된 뒤, 서울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 평화롭고 아름다운 고향에서 김태리는 농사를 짓고 음식을 해먹으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공부도 하지 않고,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고, 그래서 울지도 않는 삶. A는 집으로 가던 길, 지하철을 기다리다 불쑥 말했다. 좋겠다. 그렇게 살면 진짜 좋겠다. A는 영화 속 김태리를 생각하다 옆의 B를 생각했다. 김태리처럼 사는 건 망상에 가까웠지만 B처럼 사는 건 망상이 아니었다. 아직 해내지 못했을 뿐이었지. A는 다시 말했다. 좋겠다. 너는 직장도 다니고, 보험도 들고, 엄마 아빠 용돈도 드리고, 좋겠다. B는 A를 보지 않고 대답했다. 그래? 이거 아무것도 아닌데. 


최근 C는 모든 메신저를 탈퇴했다. C는 이번에는 고시원에 들어간다고 했다. C는 고시원으로 떠나기 전 A와 B에게 ‘그동안 고마웠다 잘 지내라’는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자다 깨어 그 메시지를 읽은 A는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C와는 더는 연락이 닿질 않았다. A는 C의 메시지를 받고 기분이 이상했노라 말했고 B는 “C가 영영 떠나는 사람처럼 말해서 그래. 나도 조금 이상했어.” 했다. C는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  


최순실 게이트가 매일 같이 뉴스를 장식하던 2016년 대한민국은 청년이 가난한 나라. 최저임금 6030원을 받으며 세금을 내고 차비를 내고 밥을 먹기 위해 아끼던 책을 중고서점에 팔아치우는 청년이 실재하는 나라다. 그리고 꼬박 4년이 지났다. 대통령과 야당이 바뀌고 최저 임금도 2000원이나 올랐다. 세상은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나아지고 있지만 스물여덟이 된 A와 B와 C의 하루하루는 4년 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천오백 원 짜리 커피를 이틀에 나눠 먹는 A와 만원 전철에 타 밀린 잠을 자는 B, 그리고 연락이 되지 않는 C. 지하철에는 무수한 A와 B와 C가 타고 있다. 


최근 A는 한 기업의 면접을 보았다. A는 4명의 면접자와 함께 면접을 보았는데 4명 중 A가 가장 나이가 많았고 가장 질문을 적게 받았다. 나이가 있으신데 향후 2년 안에 결혼하실 계획은 없으세요? A는 집으로 돌아가던 길, 자신이 받은 유일한 질문을 내내 곱씹었다. 저녁에는 맥주를 마시고 밤늦게까지 철지난 예능프로를 보며 되는대로 웃었다. B는 요즘도 가끔 샐러드를 먹을까, C는 뭘 할까 생각하다 까무룩 잠들었다. 주말 아침, A는 대청소에 나섰다. 방 안 가득 쌓아둔 오래된 책들, 소지품들, 옷들 정리하다 바닥에 주저앉았다. 장원, 은상, 입선, 장려상. 빼곡하게 쌓인 상장들. 한 때는 너무도 익숙했던 것이지만 한참을 잊고 있던 이름들. A는 상장들을 상자에 넣어 침대 밑에 밀어넣었다. 마지막 청소는 현관 정리. A는 현관의 신발들을 정리하다 면접 볼 때 신었던 까만 구두를 바라보았다. 굽은 5센티, 가격은 이만 삼천 원. 할인쿠폰을 사용해서 이만 천 칠백 원에 산 싸구려 구두. A는, 그러니까 나는 그날 현관 앞에 오래 앉아 구두를 봤다. 거울을 보는 것처럼 구두를 봤다.


* <코스미안 작품집>에 수록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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