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시 Jun 02. 2024

감사합니다라는 말버릇

인삿말 커스텀하기

이제껏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너무도 고민 없이 해 왔다는 생각입니다. 누군가와 대화를 마무리하고 긴장을 푸는 순간이면, 아, 방금은 “감사합니다”가 아니었다. 조금 더 다르게 말할 수 있었다, 라며 떫고 소심한 후회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자주 타인의 칭찬이나 친절에 금방 기쁜 마음이 되어, 무심코 감사합니다‘ 봇이 되곤 하는데요. 쑥쓰러워 어쩔 줄을 몰라 일단 이 고마운 마음이라도 상대가 알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감사합니다‘라는 툴로 다양한 말들을 함축해 ‘퉁쳐‘ 버립니다. 하지만 이런 사람이 저뿐만은 아니겠지요?


우리는 ‘감사합니다’를 서슴없이 말하곤 합니다. 가게에서 나갈 때도 ‘감사합니다’, 무언가를 받았을 때도 ‘감사합니다’, 칭찬을 받았을 때도 ‘감사합니다’, 양보를 받았을 때도 ‘감사합니다’하고 말합니다. 하루 중 마주치는 수많은 친절과 도움을 지나치지 않고 바로바로 고마움을 전할 줄 아는 마음은 얼마나 다정한지 모릅니다. 그런 ‘입술의 가벼움’은 사람 사이에서든 사회 속에서든 무척 사랑스럽습니다. 하지만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너무 쉽게 고마움을 표현할 수 있는 이른바 ‘템플릿’ 같은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그것 말고 다른 인삿말이 떠오르지 않아서 혹은 수줍어 말주변이 막히다 보니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무마하고 대화의 매듭을 가뿐히 지어버리지는 않은지요. 어쨌든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 마디면 기분 좋은 마무리를 할 수 있다, 그러한 편리함에 기대어 그동안 저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우리말 안의 다양한 인사법을 잊어 왔던 것은 아닐까요?


인사의 기본은 무릇 눈앞의 사람과 사건을 하나씩 바로 마주하는 것입니다. 고마운 순간은 하루를 살면서도 수없이 맞닥뜨립니다. 몽실몽실하고 맑고 따뜻한 그 마음은 대개 비슷해 어떤 상황에서든 뭉뚱그려 같은 마음이라 느끼기 쉽지만, 실은 매번 단 하나뿐인 고마움입니다. 상황이 다르고 사람이 다른 만큼 각기 다른 고마움의 모양이 있습니다. 그러니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어쩌면 매순간 고유하게 빚어내야 하는 하나뿐인 신중한 인사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 순간 그 사람에게 딱 맞게 전할 수 있는 인삿말을 전하는 것. 그러한 수고로움을, 그 찰나에 고민할 수 있는 소중한 말들을 낚아채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얼마 전, 통신사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마지막 상담원이 내뱉은 인사의 형태가 기억에 남습니다. “바쁘신 와중에 전화에 응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제가 애틋하게 마음에 품은 것은 ’감사합니다‘라는 말 앞에 붙은 감사함의 이유였습니다. 습관처럼 내뱉는 ’감사합니다‘가 아니라, 이 순간 상대를 똑바로 마주하고 있었다는 증거, 즉 상대의 친절을 언어의 형태로 가공해 감사함의 구체적인 이유를 덧붙이는 사려 깊은 발화 때문이었습니다. 그러한 마음씀, 인삿말에 구태여 붙는 사족이 참 다정하지 않은가요?


그후로 저도 ‘감사합니다’를 덜 말하기 위해, 그리고 더 잘 말하기 위해 두 가지 연습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감사합니다’하고 무심코 내뱉었을 순간에 다채로운 인삿말을 건네보는 것입니다. 쿠키를 받으면 ”잘 먹겠습니다“를, 식당에서 나올 때는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해 보는 것입니다. 전시나 상품을 보면 “잘 봤습니다”, 귀한 선물을 받으면 “아름답네요”, 칭찬을 받으면 “너무 기뻐요”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때로는 ”감사합니다“라는 말보다 더 상대를 기쁘게 할 수 있는 인사가 될지도 모릅니다.


두 번째는 “감사합니다” 앞에 다정한 사족을 붙이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감사합니다’의 커스텀 연습일까요. 상대의 어떤 친절이나 호의에 고마움이 들었는지 구체적으로 들려주는 것입니다. “좋은 공간을 마련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 오는데 멀리까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단순하고 평범했던 인삿말에 맥락이 생깁니다. 말 한 마디 안에 그 순간과 상대라는 사람이 깃듭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나의 마음을 전하는 데 급급한 게 아닌, 우선 이 순간과 상대를 바라보는 행위가 됩니다. 그 사람이 보여준 친절의 모양을 당사자도 볼 수 있도록 아름답게 되돌려 준다. 그런 마음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소중한 말에 더 풍부한 이야기를 담아 선물하듯이 되돌려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전 21화 좋은 경험 뒤에 남겨야 할 것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