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기본 04
"중요한 건 '알아차림'이에요.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음을 아는 것. 그렇게 일상과 명상을 구분 지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차를 마실 때 찻잔의 모양, 잔을 잡은 손의 온도, 닿는 감각, 마실 때 피부에 닿는 열기 등 매 순간 집중하며 알아차림을 반복하는 거죠."
매거진 <AROUND> 75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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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도는 어떤 자극을 받아들이는 정도, 반응의 예민함을 일컫습니다. 흔히 '감도 높은 취향'이라는 말을 할 때 그것은 안목의 예민함을 뜻하는 것이지요. 어떤 것을 보고 그 안에 깃든 미학을 얼마나 세심하게 발견할 수 있느냐를 의미합니다. 똑같은 것을 경험하더라도 더 많은 것을 발견하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의 세상은 그만큼 풍부해집니다. 일본의 한 교수는 그것을 두고 '세상의 해상도가 높아진다'라는 말로도 묘사했지요.
우리의 일상은 바쁘고 워낙 물 흐르듯 지나가기에 나를 둘러싼 모든 감각에 무던해지기 쉽습니다. 오늘 하늘의 색은 어떠했는지, 공기의 냄새는 어떠했는지, 잠옷의 감촉이 어떠했는지, 커피의 온도는 어떠했는지, 램프의 밝기는 어떠했는지... 일상의 감도를 높이는 삶은 오늘 하루,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나와 교감하고 있는 다채로운 감각들을 알아채고, 들여다보고, 인식하는 삶입니다.
일상의 공백, '일시정지'의 순간
무언가를 할 때 잠시 '일시정지'해 본 적이 있나요? 일상의 공백을 견디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있어, 효율을 위한 도움닫기는 있을지언정, 하려다 잠깐 제동을 거는 일은 드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지 않고 행하는 수많은 일들 가운데, 우리의 오감을 풍요롭게 자극하는 일들이 얼마나 다양하게 존재할까요? 매일 반복되고 당연한 일상의 모습이라고 하여 너무도 습관처럼 무심해지지는 않았을는지요.
가령 출근길에 집에서 나와 바깥에 발을 디디는 순간, 잠시 멈춰 숨을 깊게 들이쉬어 봅니다. 계절마다 다른 바람의 냄새와 시원한 공기가 폐에 가득 차는 풍만한 감각이 느껴집니다. 또 차를 한 모금 들이키기 직전, 둥근 찻잔을 두 손으로 그러쥐고서 잠시 잔의 온도를 느끼고 찻잎의 향을 맡아봅니다. 뜨거운 차가 혀에 1초 닿고 넘어가는 온도감보다, 잔을 손에 쥐었을 때 뭉근하게 느껴지는 따뜻한 온도가 실은 우리의 마음을 더욱 위로하고 있던 건 아닐까요?
이외에도 샤워 후 바로 휴대폰을 보며 다른 것에 정신을 빼앗기는 대신, 잠시 숨을 고르며 개운하고 산뜻한 느낌을 만끽하거나, 비 오는 날이면 하던 일을 내려두고 잠시 멍을 때리며 빗소리를 고요히 들어보는 것도 매우 기분 좋은 일이겠지요. 여유는 없는 것이 아니라 비집어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조용히 오감이 표출하는 반응을 점잖이 기다리는 것이지요.
오롯이 계절을 느끼는 일
"비 오는 날엔 빗소리를 듣는다. 오감을 동원해 온몸으로 그 순간을 맛본다. 눈 오는 날에는 눈을 보고, 여름에는 찌는 듯한 더위를, 겨울에는 살을 에는 추위를. 매일이 좋은 날이란 그런 뜻이었던가.'
- 영화 <일일시호일> 中
지금 건너가고 있는 계절의 감각을 오롯이 느껴본 적 있나요? 해가 어떻게 뜨고 지는지조차 알 길 없이 콘크리트 건물 안에서 일과를 보내기 십상인 일상에 계절의 변화를 실감하는 일이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주의 깊게 들여다보면 계절마다 공기의 냄새도 질감도 무게도 다르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봄에는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감상하고, 여름에는 귀청을 씻어내는 매미와 풀벌레 소리를 듣고, 가을에는 발 아래 밟혀 부스러지는 낙엽의 감촉을, 겨울에는 눈송이가 살갗에 닿았다가 녹는 속도를 지켜봅니다. 또 계절마다 다채로운 제철음식은 얼마나 입맛을 돋울까요. '계절감'이라는 말이 있듯, 계절에 맞는 감각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요?
어제도 내일도 아닌, 오늘 이 순간
"불교의 '사티'에서 유래한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모든 의식을 기울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에 집중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여기에 있고, 주위에는 푸른 하늘이 펼쳐지고 새가 지저귀고 바람이 지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이처럼 현재의 이 순간을 인식하고 그 세계 전체를 의식으로 받아들이는 상태, 이것이 마음챙김입니다."
- 사사키 도시나오 <느긋하게 밥을 먹고 느슨한 옷을 입습니다> 中
잠시 읽던 글을 멈추고 주변을 의식해 봅니다. 지금 어디에 있나요? 앉아있나요, 서 있나요? 자세는 불편하지 않은가요? 창 밖은 낮인가요 밤인가요? 오늘은 맑은가요 흐린가요? 배가 고픈가요 부른가요? 어떤 소리가 들리나요? 주변의 온도는 적당한가요? 그렇다면, 10분 뒤에도 여전히 그러할까요? 또는 1시간 후에는 어떻게 될까요? 12시간 후에는 많은 것들이 바뀌어있겠죠. 모든 것은 단지 시간이 흐른다는 이유 만으로 변합니다. 변덕스러운 내 마음도 물론입니다. 지금 이 순간의 감각과 마음을 알고 오롯이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일상의 감도를 높이는 삶입니다.
기본의 일상을 제안합니다 : 일상의 감도를 높이는 삶
1. 날씨나 계절에 따른 루틴을 만들어 봅시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늘 하루가 맑다면 환기를 시키고 햇빛이 드리워진 방에 앉아 명상을 하거나, 만약 비가 오는 날이라면 캔들을 켜고 따뜻한 우유를 마셔보는 식입니다. 봄에는 저녁마다 집 앞 천변을 산책하고, 여름에는 미숫가루를 타 먹고, 가을에는 단풍 스팟을 도장깨기하고 겨울엔 깊은 동해바다를 보러 훌쩍 떠나보는 것이죠.
2. 오감을 충만히 느끼기 위해서는, 어떠한 행위를 할 때 오롯이 그 행위에 집중해야 합니다. 산책할 때는 산책에 집중합니다. 보이는 풍경, 자연의 냄새, 발바닥의 느낌, 들려오는 소리 등 말이죠. 또 식사할 때는 식사에만 집중합니다. 영상을 보는 대신, 입 안을 자극하는 식감, 맛과 향에 주의를 기울여 봅니다.
3. 좋아하는 것의 목록을 늘려봅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라는 나태주 시인의 유명한 시 <풀꽃>에서 말하듯, 좋아할수록 더 보이는 것들이 있습니다. 취향과 관심사가 많을수록, 똑같은 일상 속에서도 나와 반향하는 것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출근길이나 집 앞 골목에 애정하는 스팟을 찾아봅니다. 또는 여러 종류의 커피 중 가장 좋아하는 메뉴나 원두를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기본의 영감을 제안합니다 :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다도에서 삶의 태도를 엿보는 영화 <일일시호일>은 '매일매일이 좋은 날'이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맑은 날도 흐린 날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매일매일 좋은 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시시각각 다채롭게 변주하는 맑은 감각들 덕분이 아닐까요? 똑똑 떨어지는 고요한 찻물, 화과자의 소박한 식감, 여름 바람에 사그락거리는 나뭇잎 등 영화 속에 넘쳐흐르는 잔잔한 감각의 향연을 느껴 보세요.
오늘의 플레이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