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들에 갇혀 버린 나의 식사
머릿속이 온통 숫자로 가득했던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바디 프로필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부터 나의 머릿속은 숫자들로 가득했다. 평소엔 그리도 귀찮던 사칙연산이, 끼니별 칼로리를 계산하는데는 어찌나 빠르게 이뤄지던지. 내 기초대사량과 활동 에너지를 합산한 값에서 섭취 칼로리를 재빠르게 뺐다. 그 값이 조금이라도 0보다 작으면 다음날 섭취량은 더 줄어들거나, 공복 상태를 더 길게 가져갔다. 최대한 16시간 공복을 유지하려 했고, 전날 저녁 식사시간이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불안해졌다(다음 날 공복 시간을 길게 가져가기 더 어려워지니까). 아래는 구체적으로 내가 ‘지키려던’ 식사 루틴이다.
기본 중의 기본이다. 세끼를 먹는 일도 많지 않았지만 (보통은 아침을 거르고 두 끼를 먹었다), 한 끼 당 400kcal 정도로 유지하려고 했다. 그래야 세 끼를 먹는다 해도 1200kcal 정도이기 때문이다. 나는 근육량도 적을 뿐더러 몸무게 자체도 얼마 나가지 않아서 기초대사량이 낮은 편이기 때문에 (1000kcal를 겨우 넘는다), 왜인지 400kcal 이상 먹는 건 부담스러웠다.
끼니별 섭취 칼로리를 계산한 것도 이것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하루 많이 먹는다고 몸무게가 바로바로 늘지 않을텐데 그땐(실은 아직도) 칼로리 계산이 머릿속을 떠다닌다.몸의 메커니즘이 그리 단순하지 않음에도 아래 공식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식사 칼로리 < 기초대사량+활동 칼로리
몸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고 근육량이 적다는 특성상 나의 기초대사량도 높지 않은 편이다. 그렇기에 ‘까딱하면’ 식사 칼로리는 후자의 값을 상회하곤 했다.
그걸 넘는 순간 바로 살이 될까 두려워, 하루 세 끼를 먹는다고 가정했을 때 한 끼당 식사 칼로리는 300~400칼로리가 된 것이다.
여전히 의식하게 되는 지점 중 하나다. 구체적으로는 1) 단백질 함량, 2) 당 함량, 3) 지방 함량을 체크했다. 나는 한 끼 식사에서 단백질 함량이 최소 20g은 되어야 한다는 나름의 기준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편의점 샌드위치 하나를 먹더라도 단백질 함량이 20g 이상 되는 샌드위치나 음식을 찾아먹으려 했고, 하나의 제품으로 그게 어려울 경우 삶은 달걀이나 단백질 음료를 추가해 먹곤 했다.
당 함량의 경우 식사 한 끼에 가급적이면 5g 미만, 최대 10g인 것만 찾아 먹었다. 초콜릿 먹는 게 이렇게 꺼려지다니! 빼빼로, 칸쵸 등 초코 묻은 과자가 이전에는 최애 과자였는데, 당 함량을 보면 도저히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음료(특히 커피)는 단 걸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 음료보다는 음식 섭취의 당 함량을 보게 되었다. 샐러드 드레싱도 크리미한 것, 마요네즈 기반의 것은 피하고 발사믹 또는 오리엔탈만 뿌려 먹었다. 그러다보니 ‘단 걸 먹고 싶지만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려 이상하게 더 단 음식에 집착하게 되었다. 다이어트 이전엔 디저트나 간식을 정말 안 먹는 편이었는데 절제하고 멈추려다 보니 더 찾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내게 라라스윗, 대체당을 활용한 간식들은 한 줄기 빛이 되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대체 당을 먹기보다는 이전처럼 당에 대한 집착을 없애는 게 더 중요했을텐데, 이 사실을 깨닫고도 당과 멀어지는 건 아직도 어려운 일이다.
지방 함량은 함량 자체 보다는, ‘단백질 함량보다는 적은 지방량‘이 내 원칙이었다. 그래서 지방이 20g, 단백질이 11g이 포함된 음식은 내 기준 탈락이었다. ’단백질 11g을 먹기 위해 지방을 20g이나 먹어야 한다고?!‘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들에 살다보니 먹을 수 있는 음식에 (매우) 까다로워지게 되었고, 식사는 은근한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 같다.
쓰다보니 길어져서 두 편으로 쪼개어 쓰게 되었다.
어찌보면 건강한 식단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은 강박이었음을 인정하며, 이렇게 글로 적고 나면 마음에서 놓아주겠지-싶은 마음에 남겨본다.
식단이 숫자에 갇혀 있을 누군가 역시도 즐거운 식사를 다시 되찾길 바라며, 그래서 건강한 몸에 한 발 더 가까워지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