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에 갇혀버린 나의 식사
머릿속이 온통 숫자로 가득했던 적이 있었을까. 생각해보면 바디 프로필을 본격적으로 준비하면서부터 나의 머릿속은 숫자들로 가득했다. 평소엔 그리도 귀찮던 사칙연산이, 끼니별 칼로리를 계산하는데는 어찌나 빠르게 이뤄지던지. 그리고 다이어트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음식과 관련한 숫자들은 자꾸만 나를 따라다녔다.
나도 모르게 갖고 있던 식이 강박 (1)에 이어, 어떻게 나의 식사들이 숫자에 갇혀 있었는지 풀어내보겠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많이 봤을 내용 중 하나가 바로 ‘탄수화물의 양’이었을 것이다. 흔히 이야기하던 ’저탄고지‘ 식단부터, 탄수화물을 줄여야 내장에 쌓인 지방이 소비된다는 이야기, 잉여 포도당은 살찌게 만들고, 정제 탄수화물로 혈당 스파이크가 야기되면 과분비된 인슐린으로 당이 지방으로 저장되어 살이 찐다는 이야기…
너무나 많은 탄수화물에 관한 안 좋은 이야기들은 나에게 두려움이 되었다. 사실 적당량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한 끼 정도 탄수화물을 과하게 먹는다고 바로 살찌는 것도 아닌데, 머릿속에 각인되어버린 탄수화물의 오명은 꽤나 그 영향력이 컸다.
다이어트 이전을 생각해보면 지난 몇 년간 나의 최애 음식 중 하나는 바로 ‘칼국수’와 ‘우동’이었다. 탄수화물 그 자체인 음식들이다(물론 떡볶이, 국밥 등도 빼놓기엔 아쉬운 음식들이다). 그러나 다이어트 중엔 물론이고, 다이어트 이후 1년 반이 지났음에도 이런 음식들을 온전히 즐겼던 적은 손에 꼽을 지경이다. 물론 칼국수를 먹었던 적도, 우동을 먹었던 적도 있긴 하지만 먹기 전에 건더기를 더 많이 건져먹는다든지, 더 먹을 수 있음에도 먹는 양을 줄여버린다든지, 다른 밑반찬들을 더 많이 먹는다든지…하며 이런 음식들을 먹는 나의 일종의 죄책감을 덜기 위한 노력들을 많이 했다. 엽떡을 먹을 때는 어떠한가. (딱히 도움되지는 않았을 것 같지만) 오뎅과 양배추, 소세지를 더 먹었고, 닭가슴살을 사와 엽떡과 함께 먹으며 떡은 많이 안 먹는 전략을 펼치기도 했다.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게 아닌데 다이어터의 식습관이 여전히 남아있던 셈이었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참 간사하다고 해야 할까? 아님 정직하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식사에서 탄수화물을 줄여버리니 다이어트 이전에는 관심도 없던 디저트에 눈이 많이 가기 시작했다. 살면서 이렇게까지 빵을 좋아했나 싶을 정도로 빵순이가 되어버린 것이다. 인스타그램 광고로 빵과 관련된 온갖 게시물들이 뜨고, 유튜브 알고리즘에도 빵과 초콜릿, 각종 디저트 먹방이 올라오곤 한다. 물론 또다시 ‘죄책감’과 함께. 이 빵을 먹으면 혈당이 튈 텐데, 이 빵 먹으면 저녁 식사는 줄여야겠는걸-하는 생각들은 내가 빵을 먹으면서 했던 생각들이었다. 그렇게 탄수화물에 대한 갈망과 죄책감을 반복하게 되었다.
마지막 식이 강박 중 하나는 바로 ‘공복 n시간’이었다. 전날 ‘과식한 것 같은 느낌’이 들때면 어김없이 다음 날은 16시간 공복을 지켜야만 했다. 회사 점심시간이 12시 반부터인데, 아침을 먹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전날 저녁 8시 30분에 식사를 종료하는 것이 내겐 식사 마지노선이었다. 저녁 식사를 일찍 마치는 건 물론 소화를 다 시키고 잔다는 의미에서 위에 좋을지 몰라도, 문제는 공복 시간에 ‘얽매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16시간 공복을 지키지 않으면, 조금 양보해서 14시간 공복을 지키지 않으면 왜인지 살이 찔 것만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었달까? 이런 생각들은 자꾸만 아침을 거르게 만들었다.
공복에 대한 집착은 오히려 바디 프로필 이후에 더 심해졌던 것 같다. 바디 프로필을 준비할 때는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운동을 했었으니, 전날 저녁 식사 시간과 무관하게 어떻게든 단백질과 탄수화물을 보충해야겠다는 생각에 오히려 아침을 잘 챙겨먹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바디 프로필 촬영이 끝나고 나서는 아침 운동 루틴이 사라져버렸으니, 아침을 먹을 이유가 없어지고 말았다.
특히 저녁 식사를 기점으로 머릿속엔 자동으로 16시간, 조금 양보해서 14시간, 정말 배고플 땐 12시간을 계산하고 있으니 머릿속은 항상 먹을 것에 대한 생각으로 복잡했던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강박이었던 셈이다.
글을 써 내려가다보니 꽤나 솔직하게 나의 상태를 고백하게 되었다. 글자로 나의 상태로 옮기고 보니 나의 이상한 사고와 행동들은 식이 강박이었음이 선명해지는 것 같다. 부끄럽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하는 이유는, 이렇게 글로 풀어내어 강박을 ’보내주기‘ 위함이다. 내가 갖고 있는 이상한 패턴들을 직시하고, 인정하다보면 자연스레 놔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온전히 나를 위해서다.
그리고 혹여나 이 글을 읽고 남의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누군가에게도, 나도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당신들도 조금 식이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혼자 앓는 것보단 함께하는 게 더 힘이 되는 법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