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도 중독과 강박이 될 수 있음을
학창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수업 시간은 사회 시간, 그리고 체육 시간이었다. 사회 시간이야 전공까지 했으니 말 다한 것 같고, 체육 시간은 '스포츠'를 하는 그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 가령 피구 경기를 한다거나, 발야구를 한다든지(구체적을 들어가면 탁구는 또 싫어했다-작은 공보단 큰 공을 선호하는 타입이었다) 등. 친구들과 협업을 하거나, 내가 나의 능력을 발휘하여 승패를 나누는 그 일련의 과정이 즐거웠던 거다. 무엇보다 체육 실기 평가도 언제나 평균 이상, 아니 거의 만점을 매번 받았다고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름 신체 활용에는 자신이 있었다.
갑자기 왜 체육시간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는지 의아할 수도 있겠으나, 어쨌든 이런 나였기에 운동은 ‘좋아해서’만 하는 줄 알았다. 물론 운동을 좋아하는 건 여전히 사실이지만, 운동을 하게 되는 동기가 오롯이 ‘좋아함’만 있지 않음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놀랍게도 나는 중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운동이라곤 거의 하지 않았다가, 21년부터 클라이밍을 계기로 조금씩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운동을 하게 된 것은 바로 작년. 23년 새해 목표를 세우다 갓생 라이프를 꿈꾸며 PT를 끊고, 바프까지 찍으며 그때부터 자연스레 운동은 내 생활에 아주 큰 습관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바프를 찍어야겠다고 마음 먹기 전에는 매일 아침 운동하며 '갓생'을 살고 있다는 뿌듯함이 컸고, 바프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하고 나서는 또렷한 목표 의식이 생기며 운동을 꾸준히 이어나갈 수 있었다.
운동의 습관화는 물론 근육을 만들고, 체력을 키우는 등 여러 방면에서 분명 좋은 점도 많았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피곤한데도 운동을 가고, 많이 먹은 것 같은 날 혹은 그 다음 날이면 죄책감에 운동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했다. 이런 행동들이 진정 '운동을 좋아해서' 하는 것인가?-라고 묻는다면, 그 누구도 아니라고 대답할 것이다.
생각해보면 운동이라곤 클라이밍만 했던 21-22년, 클라이밍은 '재밌어서'했던 날들이 더 많았다. 머리로 푸는 방법을 예측해보고, 몸을 날리고, 점프하고, 팔과 다리를 쭉쭉 뻗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재밌어서 클라이밍장에 갔던 것이지 '많이 먹었으니까', '많이 먹을 예정이니까' 클라이밍을 갔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2023년 바프를 준비하면서, 혹은 준비하고 나서는 '오늘은 클라이밍 가니까 (칼로리 소모를 많이 하니까) 많이 먹어도 돼', '오늘은 많이 먹었으니까 클라이밍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날들이 늘어났다. 정말 좋아했던 운동마저도 언젠가 의무감과 죄책감에 하고 있다는 사실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조금 슬프다.
이렇게 운동도 강박이 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강박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운동과는 안녕-해야 하는데, 그럼 살이 찌고 마니까. '재밌으니까'라는 이유는 살이 찌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려줄 너무나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다. 실제로 재미는 어느정도 운동을 하게 만드는 동력이 맞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해야만 하는 의무감이 아니라 재밌으니까 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믿으며 애써 강박을 부정했던 것이다.
그러다 운동도 강박이 될 수 있음을 완전히 인정하게 된 것은 한의원에서였다. 의사 선생님은 다낭성으로 인한 무월경보단 시상하부성 무월경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식이 강박, 운동 강박, 스트레스, 부족한 수면...등등의 원인으로 시상하부에서 월경을 촉진할만한 대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더 게을러져야 한다, 식사 잘해야한다' 라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갑자기 감정이 올라오더니, '운동도 그만하세요, 몸을 쉬게 해야 해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미친듯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들이 너무나 내 문제의 정곡을 찔렀던 탓이리라.
운동 강박을 끊어내는 게 식이 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보다 내겐 더 어려운 것 같다. 한 번에 모든 운동을 끊어내기란 내게 너무나 어려워서, 현재는 일주일에 운동하는 횟수를 줄이고, 종류를 바꿔나가고 있다. 일주일에 5번 이상 하던 운동을 3번 이하로 줄였고, 웨이트 위주의 운동을 스트레칭과 맨몸 운동으로 바꾸었다 (무거운 웨이트를 치는 것도 코르티솔 호르몬의 분비 때문에 꽤나 큰 스트레스가 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조차 생리를 돌아오게 만들지 못한다면 정말 쉬어야겠지-생각은 하고 있다(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힘들다).
이제는 나의 몸과 마음을 더 세밀히 돌보아야 할 것 같다. 여태까지 나의 생활 습관들이 어쩌면 나를 괴롭히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의무감에, 강박 때문에 운동을 하고 있다면 함께 게을러지자고, 이제는 몸과 마음에 온전한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