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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만에 되찾은 자연 생리

하염없는 기다림, 그 끝에서

by 도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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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2년만이다. 23년 6월 바프 이후로 자연 생리가 뚝 끊겨버렸으니까 말이다. 그간 글을 쓸 수 없었던 것은 그저, 하염없는 기다림 속 답보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업데이트를 할 내용이 없으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저 불안한 마음만 토로하게 되는 일기장이 되진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그날, 회사에서 유독 속이 더부룩하고 아랫배가 빵빵해지는 게 너무 불편했다. '오래 앉아 있어서 그런가?' 싶어 모션데스크를 올려 서서 일했다. 그마저도 나아지는 게 없어 화장실에 갔는데, 휴지에 무언가 점성있는 빨간 것이 묻어나오는 게 아닌가! 언젠가 생리를 한다면 속옷에서 발견하는 게 아니라, 화장지에 묻어나오는 걸 먼저 보게될까? 막연히 상상만 하던 장면이 실제가 된 것이다. 자연 생리를 한다면 가슴이 벅차오르며 눈물을 흘리게 될까 싶었는데, 야근이라는 상황 속에 있었던 탓일까 꽤나 무던히 넘겼다. 갑작스레 찾아온 생리에 기쁜(?) 마음으로 회사 건물에 있는 편의점에 내려가며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2년만의 자연 생리를 하게 됐다는 소식으로 엄마의 헤묵은 감정이 씻겨 내려가길 바라며. 정확히 알 수는 없었으나 휴대폰 너머 엄마의 목소리도 떨림과 벅차오름으로 가득했던 것 같다. 그 목소리에 괜히 내 목구멍도 뜨거워졌으니 말이다. 바로 퇴근하고 맥주나 한 캔 하고 싶었지만, 야근이라는 현실에 굴복하며 그날은 꽤나 얌전히 보냈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기다림이 힘들었던 건 '막연함'에 대한 불안과, 주변 사람들에게의 미안함이 컸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속에서 왜 이렇게 난임과 관련한 게시물들이 많이 보였던지. 월경을 잘만 하던 사람들도 이렇게 난임을 많이 겪는데, 무월경인 나도 난임 확정 아닐까? 아니, 난임이라도 어떻게든 아이를 갖게 되면 다행이지, 설마 불임은 아니겠지? 아직 먼 미래지만 그때까지도 무월경이면 어떡하나-하는 걱정이 머릿속에 가득했던 날들도 있었다. 2년 전부터 나의 유튜브 알고리즘을 정복해버린 다이어트 관련 영상들은 자꾸만 살쪄가는 나의 몸에 대한 불안과 불만을 키우는 것 같아서 구독을 끊었지만, 요즘 나의 관심사로 등극해버린 저속노화와 혈당 관련 영상들은 안 볼 수가 없었다. 건강검진 결과에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꽤나 많이(!) 높게 나왔고, 공복 혈당은 정상 범위에 있긴 했지만 혈당 조절이 잘 안되는 것 같은 느낌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식이 강박을 극복하려면 피어 푸드(fear food)도 먹어주며 음식에 대한 공포감도 없애야 했고, 주로 나의 입은 저속노화 식단에서 멀리하는 당과 밀가루를 많이 찾았기 때문에 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뭐, 나중엔 이래도 되나 싶은 걱정 속에서 '그럼에도 호르몬 축 회복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그냥 먹고 싶으면 먹었다.


막연함에 대한 불안이 무월경 기간 마음 속 한 축이었다면, 미안함도 꽤나 컸다. 가장 미안했던 건 아무래도 부모님이다. 엄마는 나 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나보다 더 나의 무월경 상태를 걱정하셨을 거다. 딸이 결혼을 앞두고 (1년 남았지만...) 무월경을 겪으니 걱정이 될 수밖에. 원할 때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 그게 그렇게 걱정이었다고 했다. 아빠도 내색은 안했지만 무언가 잘 안 먹는 딸 때문에 속이 탔을 것이고, 그저 회복을 바라며 한약을 계속 시켜줬다. 우리 집 식구 중 유일한 남성이라 나의 무월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걱정 또한 이야기하기 어려웠을 거다. 그 자세한 속을 헤아릴 순 없지만 그냥 그의 마음에 너무도 미안했다. 동생은 또 어떤가. 디저트를 먹을래, 말래? 주저하고 망설이던 언니 때문에, 왜인지 동생과 본인의 식사량을 의식하는 언니 때문에 덩달아 불안했을지도 모른다.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도 내가 걱정했던 것만큼이나 신경썼던 걸 알기에 미안하고 고마웠다. 내 앞에서 굳이 내색하지 않았던 것도.


무엇보다 불안과 미안함으로 고생했던 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기로 한다. 애닳았던 마음으로 가득했던 그 2년간 나의 모습을 회상하며. 한의원에서 침 치료를 받으며 무월경 극복 후기를 찾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월경 전조 증상을 검색하고, 카페에서 나와 비슷한 사례를 찾으며 마음 아파했던 그 날들. 한의원에서 식이와 운동에 대한 강박을 최초로 인지하며 눈물을 왈칵 쏟았던 날, 감정 주체가 안 됐던 날 ... 무월경의 시기는 돌이켜보면 나를 돌보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정신력으로 피곤함을 억제하고 몸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았던 그 최후가 어떤지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자연 생리가 찾아왔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닐 거다. 두 번째 생리를 하느냐, 그것이 관건일 텐데 산부인과에서 생리를 너무 오래 안 해도 안 좋다고 호르몬제 (프로베라)를 먹어보자고 했다. 그래야 일단 주기 관리를 할 수 있다고. 두 번째 생리는 (아마도) 약에 의존해서 하겠지만, 어쨌든 큰 산 하나는 넘었다고 생각한다.여전히 배란이 가능하다는 것. 호르몬 축이 점차 돌아오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니 말이다.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이었다. 사실 생리를 되찾으니 운동을 하고픈 욕구도 생겼지만... 무리는 하지 말아야겠다. 아직 회복 중임을 잊지 않기로 한다.




덧. 혹시라도 이 글을 보고 있는, 무월경으로 마음 고생 중인 나와 비슷한 이들을 위해 다음 편에서는 월경의 전조증상, 강박을 내려놓게 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풀어보고자 한다. 비슷한 증상이 있다면, 또 누군가 극복한 이야기를 보다보면 조금이나마 힘이 되니까 말이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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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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