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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진 않지만, 안 해도 된다는 마음으로

운동을 줄이기로 마음먹은 날들

by 도푸지

알람이 울린다. 5시 30분, 5시 36분, 그리고 마지막 알람은 5시 45분. 손을 뻗어 알람을 끄고는 몇 초간 멍하니 누워 있다. 일어나서 갈까, 말까. 그래도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가도, 그냥 눈 감고 조금만 더 누워 있고 싶은 마음이 든다.


회사와 집이 멀지 않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이유는 7시에 있는 필라테스 수업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면 필라테스 이후에 이어지는 유산소 운동까지 포함된 루틴이다. 운동을 마치고 샤워까지 하고 나면 정말 개운하다. 몸의 중심이 바로 잡히는 느낌, 하루를 정돈한 기분이 든다.


하지만 매번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걸 내가 원해서 하는 걸까, 아니면 안 하면 불안해서 하는 걸까? 기본적으로 필라테스를 '해야만 할 것' 같았던 이유는 나의 척추측만증이다. 장애 진단을 받을 정도로 척추측만증이 심한 나는 코어 근육을 기르고 자세를 교정하는 게 평생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는 생각이다(측만증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풀어보겠다). 그러니 필라테스 자체는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일까. 필라테스 수업은 저녁 6시, 7시, 8시에도 있는데, 보통 저녁 수업 직후엔 유산소를 하지 않는다. 퇴근 시간을 고려하면 7시 수업이 현실적인데, 운동이 끝나면 8시라 배도 고프고 식사 시간이 더 늦어지는 것도 싫어서다.


그런데 아침 운동은 좀 다르다. 저녁에 시간이 안 되어서, 혹은 운동을 빼먹으면 안 될것만 같아 새벽에 일어나는 걸 택한 건지도 모르겠다. 사실 시간이 없으면 쉬어도 되는 일인데 말이다. 한 주 동안 먹은 것들과 활동량을 생각해보면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약간 무리한다는 걸 알지만 어김없이 눈을 비비고 집을 나선다. 운동에 대한 강박은, 여전히 놓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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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 강박보다 운동 강박을 내려놓는 게 내겐 더 어려웠다. 식사에 대한 강박은 피치 못할 약속이나 혀의 욕구로 인해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데 운동은 다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할 수 있기에 오히려 통제가 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정말 ‘안 하려고’ 노력했다. 꾸준히 다니던 그룹 PT를 그만뒀고, 새벽 골프 연습도 멈췄다. 자꾸만 숫자를 보게 되어 구속처럼 느껴졌던 애플워치도 차고 다니지 않는다. 약속이 많아 과식이 잦았던 주말엔 클라이밍을 의무처럼 가곤 했지만, 강박에 대한 걸 인지하고 난 후엔 ‘그냥 쉬자’고 마음먹고 가지 않은 날도 많았다.


강박을 내려놓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부지런함과 갓생에 대한 갈망을 끊어내는 것이었다. 어쩌면 너무나 성실하고, 끈기있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운동이나 식단에 대한 강박을 놓기가 더 어려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완벽해야만 할 것 같고, 쉬거나 관리를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자꾸만 생기니까. 주변에서 출근 전 아침 운동을 하는 사람들, 식단과 운동을 건강하게 지키며 갓생을 살아가는 사람들, 운동으로 노화를 늦춘다는 영상들, 건강을 챙기려면 운동은 필수라고 말하는 전문가들을 보면 더 그런 생각이 들곤 했다. 그렇지만 나도 안다. 지금은 그런 것보다 몸의 호르몬 축 회복이 먼저라는 걸. 그렇지만 운동을 하지 않으니 체력이 줄어드는 게 느껴지고, 몸이 무거워지는 게 불안했다.


그럼에도 이런 '불편해져버린' 쉼의 시기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힘들지만 몸을 이전처럼 돌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나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회복을 위해서라면 다이어트 때 들였던 만큼의 노력은 필요하다고 말이다. 휴식도 연습이고, 다이어트 때 운동을 꾸역꾸역 갔던 것처럼 불편한 마음이 들어도 의도적으로 쉼을 택하는 노력들 말이다. 쉼은 게으른 게 아니라 몸을 돌보는 행위라는 마음가짐을 갖추려고 하는 것도 노력의 일환이다.생각해보면 다이어트 이전엔 운동에 이렇게까지 집착하지 않았고, 밥도 점심 저녁 든든히 먹었다. 그럼에도 언제나 몸무게는 항상성을 유지하며 비슷했으니(딱히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 힘을 믿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불안함이 불쑥불쑥 찾아올 때면 다이어트 이전의 내 몸과 생활습관을 생각했고, 불안함을 잠재우는데 꽤 도움이 됐다. 시간이 좀 많이 걸렸지만 어쩌면 이런 강박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러워졌기에 월경이 다시 찾아왔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나는 여전히 운동 강박을 완전히 극복하진 못했다. 오늘 아침에도 ‘갈까 말까’를 고민했고, 결국 수업에 갔다. 하지만 운동에 가지 않으면 죄책감이 들었던 예전과 다르게 더 이상 죄책감에 휘둘리지 않게 되었고, 스스로에게 묻는 습관이 생겼다. ‘정말 원해서 하는 걸까, 아니면 해야만 할 것 같아서 하는 걸까.’ 그러다 보니 예전보다 덜 휘둘리고, 조금은 숨 쉴 틈이 생긴 것 같다. 그렇게 천천히, 하나 둘씩 내려놓으며 기다리다보니 조금씩 몸이 회복되지 않았을까. 그러니 강박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해서 너무 자책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하루아침에 다 내려놓긴 어려운 거고, 예전보다 조금 덜 집착하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미 꽤 큰 변화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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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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