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는 월경을 기다리며
피임약을 끊으니 역시나 자연 생리는 감감무소식이다. 감정 기복이 크고 감정 조절이 힘들다는 꽤나 심각한 부작용이 있었기에 다시 피임약을 먹는 것은 신중함이 필요했다. 또 어느새 열 달이 지나버린 호르몬 검사를 다시 해야 했다. 여전히 호르몬 때문에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호르몬 수치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치료가 병행되어야 했다. 그리고 호르몬 치료는 대형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고 의사 선생님은 덧붙이셨다.
호르몬 치료라니! 단어의 조합이 이렇게 두려울 수 있나. 여성 호르몬도, 남성 호르몬도 낮았던 나의 몸을 떠올리면 나는 그 어떤 성도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치료를 하고 있다는 게 알려지면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이 오해를 하진 않을지 걱정되었다. 그리고 결혼 생각이 있는 나였기에 더욱더 불임에 대한 걱정까지,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커져만 갔다.
지난 9월 호르몬 검사 결과지를 살펴보면 여성/남성 호르몬 수치 모두 바닥을 치고 있었기에 이걸 끌어올리는 게 쉽게 될 리 없을 것 같았다. 보통 다낭성 난소 증후군인 사람들은 남성 호르몬 수치는 높고, 여성 호르몬 수치는 낮다는데 나는 모든 수치가 낮으니 더 답이 없어 보였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인 사람들의 보통의 증상으론 살이 찌기 때문에, 살을 조금만 빼도 도움이 된다는데 체중 감량으로 인한 호르몬 불균형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았다.
[00 산부인과] 고객님 검사 결과 나왔습니다. 내원하셔서 설명 들으시길 바랍니다.
일주일이 걸린다던 호르몬 검사는 3일 정도 후에 바로 결과가 나왔다. 정상이었다면 굳이 내원하지 않아도 되었을까? 아니면 정상이든 아니든 설명이 필요해서 내원하라는 걸까? 이런저런 걱정 속에 휴게시간을 쓰고 문자를 받은 즉시 곧장 회사에서 나와 바로 병원으로 갔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호르몬 검사 결과는 모두 정상이었다. 다만 갑상선 호르몬 수치가 살짝 낮은 게 다른 의미로 염려된다고 하셨다. 갑상선 기능 저하증이 의심된다며, 혹시나 갑상선 쪽으로 가족력이 있는지도 물으셨다. ’성호르몬이 정상으로 돌아오니 이젠 갑상선이냐!‘라는 생각과 함께 산 넘어 산 같았지만, 그래도 일시적으로 요오드가 들어간 식품 섭취가 적으면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니 두고 보자고 하셨다. 일단 호르몬 수치는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큰 걱정은 하나 넘긴 셈이었다.
어찌 됐든 무월경은 호르몬 수치 이상으로 야기되는 것 같지는 않았다. 결국은 다낭성 난소 때문에 생리를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고, 일단은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는 게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었다.
마음 같아선 내 난소와 대화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니? 기약 없는 기다림은 나를 너무 힘들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몸의 사인에 반응을 하고 해결책을 어떻게든 찾아야만 했다. 고작 3kg 때문에 월경이 멈추다니. 이렇게나 여성의 몸은 너무나도 정교하고 예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