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에는 와인보다 맥주
동유럽 하면 많은 사람들이 프라하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붉은 지붕과 삐뚤빼뚤한 다리,
달콤한 흑맥주와 재즈가 어우러진 이곳.
사랑스러운 도시다.
어제 까를교를 걸으며 눈여겨본 장소가 있었는데, 바로 백조가 잔뜩 몰려 있던 곳이다.
특별히 지도를 보지는 않았고, 그냥 그쯤에 있겠거니 하며 방문했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카프카 박물관 앞에 위치한 이곳은 일종의 전망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많은 사진작가들이 노을에 닿은 까를교를 찍기 위해 방문하는 곳이라고 한다.
쌀쌀한 날씨 탓에 어깨는 계속 움츠러들었지만 이른 저녁, 작은 계획을 세웠다.
바로 재즈바에 가보는 것이었다. 까를교 바로 옆에는 유럽 3대 클럽이라며 건물 하나가 통째로 클럽인 공간이 있다. 하지만 너무 크고 정신없는 음악은 듣고 싶지 않았고, 조금은 잔잔하면서 내가 듣고 싶은 만큼만 들을 수 있는 재즈바가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겨울인지라 4시만 되어도 하늘은 다른 색을 보여줬고, 길어진 밤을 즐기기엔 적절한 시기였다.
구 시가지 광장에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다. 천문시계가 있던 탑에 올라 이 광장에서 열리는 크리스마스 마켓을 내려다보면 그렇게나 풍성한 장면이 없다는데, 오르려는 사람이 워낙 많아서 마음을 접고 재즈바로 계속 걸어 나갔다.
재즈바는 마치 동굴 같았다. 허름한 건물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지나면 마치 벙커처럼 엄청난 천장의 높이를 자랑하는 지하 공연장이 나타난다. 실제로 세계대전 때 벙커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든 곳이라고 했다. 입장료가 특별히 있던 것은 아니지만 주류를 반드시 1인당 한 잔씩은 시켜야 하는 규칙이 있었다.
재즈를 떠올리면 이상하게 와인과 함께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는데, 막상 제대로 된 기회에 즉흥연주를 포함한 재즈 공연을 즐기자 맥주가 더 끌렸다. 아마도 취미 그 이상으로 애정을 담아 연주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 넓은 공간에 단 6명만이 있었고, 4명의 연주자는 6명을 위해 혼신의 노래를 들려줬다.
나도 모르는 사이 발과 손으로 박자를 즐겼고, 어느덧 내 잔에 있던 맥주는 재즈와 함께 내 몸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