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급 6만 원
나는 편법의 달인이다.
수능을 두 번 봤는데,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면서 평가원이 이의제기 기간을 만들어 놓은 것에 관심이 생겼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공정한 시험은 수능이라고들 하는데, 만약 신뢰도를 잃는다면 얼마나 큰 파장이 생길까?
이 생각에서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이의제기를 받은 평가원이 내놓는 해명들은 '지문 속에 이러한 부분이 있으니, 이 답을 고를 수밖에 없다'는 식이었다. 즉, "문제 속에 답이 있다."라는 명제가 신뢰도의 바탕이었다.
사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반에서 3등 정도를 항상 유지하긴 했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우리 학교가 공부를 잘하는 학교도 아니었다. 그래서 모의고사 성적으로 미루어 봤을 때 원하는 대학에 가기는 힘들다는 결론을 내리고 수시에 집중했었다. 하지만 첫 번째 입시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결과를 받고 두 번째 입시를 준비하며, 기본적으로 수능을 잘 봐야 입시를 준비하는데 일종의 안전망이 생긴다고 생각해 나름의 공부 방식을 고민했다. 잘하는 편이 아니었으니 바닥부터 공부해야 했고, 중학교 1학년 과정부터 다시 차근차근 살펴봤다.
그 양은 너무 방대했기 때문에 조금은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해내야 했다. 모든 정규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하고 이해하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틈나는 대로 쉽게 문제를 풀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문제 속에 답이 있다."라는 평가원의 힌트로 나만의 문제를 푸는 방식을 갖췄다. 예를 들자면 수능 영어 문제 중 세 문단의 순서를 맞추는 문제가 있었다.
'하나의 펜'은 '그 펜' 뒤에 올 수 없다. 이미 지칭한 펜만이 '그'라는 지칭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풀 네임이 반드시 앞에 와야 한다. 처음부터 마이클이라고 소개하고 뒤에서 마이클 잭슨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색하다. 마이클 잭슨이라고 인물을 소개하고 뒤에 '그' 혹은 '마이클'로 불려야 한다. 시간의 흐름도 중요하다. 아침, 점심, 저녁 순으로 이야기가 이어져야 한다. 마지막 문단에는 반드시 이야기를 마치는 결국, 그러므로 등의 단어가 들어가야 한다. 이런 나만의 기준을 세웠고, 문제를 읽고 풀기보다 기계적으로 풀어버렸다. 그 결과 첫 번째 수능으로는 수도권 대학도 겨우 가는 성적이었는데, 재수를 한 지 4달 만에 본 6월 평가원 모의고사에서 수학 두 문제만 틀리고 전 과목을 다 맞아버렸다.
나의 경험은 편법처럼 보이지만 하루에 영어 단어 300개를 외워가며 나름의 적당한 편법이었다. 공부법이란 것이 모두에게 똑같은 효과로 적용되기는 어렵지만, 나의 이런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누군가에겐 흥미로웠나 보다. 대학에 입학한 후 고등학교 때 대외활동으로 인연을 텄던 청소년 수련관에서 사진과 관련하여 청소년들에게 재능기부를 했었다. 그때 알고 지낸 한 여학생이 자신의 친구가 과외 선생님을 구하고 있는데, 공부를 못해 나처럼 급격한 성적 상승을 원한다고 아르바이트 자리를 추천해줬다. 그 학생의 (이제부터 과외돌이라고 부르겠다.) 어머니와도 급격히 이야기가 진전되었는데, 나는 처음부터 편법을 알려줄 생각이라고 말했고 오히려 좋아하셨다.
편법은 정규 커리큘럼보다 알려주기 쉽다. 사실 한 달이면 방법을 마스터할 수 있다. 하지만 돈을 벌겠다는 욕심 아래 시간을 늘려가고 문제를 억지로 만들어 과외돌이를 훈련시켰다. 놀랍게도 한 달에 25만 원을 받으며 주 1회, 한 달에 4회 만났으며 만날 때마다 불과 한 시간 정도 시간을 썼다. 사실상 시급 6만 원인 셈이었다. 훨씬 더 좋은 교육자들도 있고, 더 좋은 학교를 나온 친구들이 들으면 비웃을 이야기지만 과외돌이는 5등급의 성적을 가지고 내게 기대하는 바가 있었기 때문에 나름의 합의를 본 급여였다. 하지만 과외의 매력도 분명 있지만, 어려운 부분도 명확하다.
1. 숙제
과외돌이가 숙제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단어를 외워와라, 듣기 문제를 풀어와라 등 숙제를 내주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하지 않았다. 숙제를 하지 않으니 나도 기대하는 바가 없어졌고, 솔직히 나도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돈이나 받으면 됐지라며 대충 시간을 때우기 급급해졌다. 교재를 따로 구입하라고 하지 않고 내가 구입해서 갖다 주기도 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2. 스케줄
과외가 시급만 놓고 보면 굉장히 효율적인 아르바이트처럼 보이지만, 아니다. 1시간 교육을 위해 적어도 본인이 책임감이 있다면, 그리고 대단히 높은 지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그 정도의 공부를 하고 가야 한다. 무슨 뜻이냐면, 나는 1시간 교육을 위해 적어도 30분에서 1시간은 진도가 나갈 범위에 대해 공부를 하고 간다는 말이다. 결국 보이지 않는 시간을 소비하게 되어, 마냥 높은 시급이 아닐 수 있다는 결론이다. 또한 과외돌이의 스케줄에 맞춰 움직이므로, 만나기로 한 날에는 다른 약속을 잡을 수 없다. 나의 하루를 사실상 이 친구를 위해 쓰는 셈이다.
3. 방황
이 친구는 특별한 케이스인데, 음주를 좋아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면서 어디서 구했는지 술을 몰래 친구들과 마셨는데, 나에게 이 친구를 소개해준 여학생에게 매번 들켜 알게 모르게 방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5등급의 성적을 받는 것은 이 친구가 대단한 건지 그보다 더 공부를 안 한 친구들이 대단한 건지 알 수 없는 길이었다.
아무튼 과외는 어머니께서 선입금해주시던 과외비가 아무 연락 없이 입금되지 않자 자연스럽게 마무리가 되었다. 수능을 한 달 앞둔 시점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내가 모은 자료들과 책들, 그리고 노하우를 나름의 최선을 다해 알려줬고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친구가 수능에서 2등급을 맞아왔다. 본인도 처음 받은 점수라며 나에게 고맙다며, 술을 사겠다고 했는데 도저히 술을 먹고 싶은 마음은 안 들어서 군대를 간다며 약속을 피했다. 2014년 새내기 시절의 아르바이트는 이만큼 아찔했다.
■ 과외
장점 : 본인이 모든 것을 구성하는 교육 과정, 자유로운 스케줄, 높은 급여
단점 : 본인이 모든 것을 구성해야 하는 교육 과정, 비정기적인 스케줄, 급여만큼 높아지는 과외돌이 부모님의 기대감, 학생에 따라 달라지는 교육 난이도
급여 : 월 25만 원 (4회 기준)